주일을 지키는데 있어서 남의 시비(是非)를 논할 때에 주의할 것.
위에서 논하였거니와 부득이한 경우, 또는 자비나 사랑을 사람에게 베푸는 경우에 신자들의 해석이 다를 수 있다. 이런 문제에 일정한 표준을 세울 수 없으니, 각 신자의 신앙 양심에 맡겨야 한다.
가령 어떤 주일날 두 사람이 주일 예배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하자. 한 사람은 복통이 나서 예배에 불참하였다. 그 사람은 실상 복통을 좀 참기만 하면 예배에 참석하여도 견딜만 하였다. 그러나 그는 잘 조리하게 위하여 그랬는지 모르나 예배 시간에 나가지 않았다.
당회가 이 사람을 벌해야 될까? 다른 한 사람은 두통이 나서 예배에 못참여 했는데 그는 견딜 수 없을 지경으로 고통을 당했다. 이 사람만이 그 예배불참에 대하여 용서받을 것인가? 목사는 병으로 예배에 불참한 자들의 그 질병의 고통정도(苦痛程度)를 조사해야 되는가?
그리고 예배에 불참해도 용납될만한 질병은 무엇이라고, 그 고통의 정도는 어느 정도라고, 교회가 표준을 세운 적이 있었는가? 없다. 그런 표준을 세울 수도 없지만, 만일 누군가 그런 표준을 세워서 그대로 신자들을 다스린다면 그것을 율법주의고 복음이 아닐 것이다.
그런고로 주일날 할 수 있는 ‘부득이’한 일의 종류도 지정하지 않고, 그 표준도 정하지 않은 것이 우리 장로교 교리의 신중한 태도이다. ‘부득이’나 ‘자비’에 대한 결정은, 신자 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가진 신앙 양심에 맡길 일이고 서로 비평할 일이 아니다.
신앙 양심 자유를 비평하는 것도 위험하다.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서에 대한 해석에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확정적으로 말씀하시지 않는 것을 가지고 사람의 양심을 구속(拘束)하는 것은 신성모독 및 인류반역을 의미하는 큰 죄악이다”라고 하였다(意譯, Hodge, Commentary on the Confession of Faith, p. 362).
한국교회 전통이 주일을 엄수(嚴守)하였다는 막연한 말만 가지고, 본인이 잠깐 부득이하여 선교사 전송할 행동을 트집잡고 본인을 전국적으로 매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 이유는 교리는 성경에 확실히 가르친 것에 근거하고서만 작성(作成) 됐기 때문이다.
출처 : http://www.kosi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8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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