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긴밀하게 교회와 국가가 협력하더라도, 교회와 국가는 다르다. 교회와 국가는 구성원을 고려할 때뿐만 아니라 직부과 행정, 제도와 법을 고려할 때도 다르다. 외국인은 이스라엘의 영적 특권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말하자면 시민이 되지 않고 교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었다. 문둥병자와 부정한 사람과 추방된 사람은 시민으로 남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들은 공동체 밖으로 격리되어 추방당했다.
복음을 반드시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복음은 반드시 정체적 체계 혹은 사회적 체계를 복음으로 바꾸지 않고도 자신을 나태내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 복음은 무엇을 위해 선포하는가? 고대의 모든 사람들이 몰랐고, 고대 세계의 토대를 뒤흔든 이 새로운 요소는 무엇이었는가? 하늘과 영적 문제와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의가 명확하며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실제이자, 그런 가치가 모든 보이고 일시적인 모든 사물을 초월해 있다는 사실이 복음이다. 복음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없다. 인간 사이에서 아무리 크고 놀라운 것일지라도 말이다.
복음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은 문화의 영향, 오늘날 삶의 유용함에 미치는 영향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복음은 그 자체로 보물이며, 큰 가치를 지닌 진주다. 비록 복음이 누룩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기독교의 가치는 확실히 오직, 배타적으로, 심지어 문명화에 미치는 영향에 의해 먼저 판단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기독교가 그런 영향을 미친다는 시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서 그리스도가 가져온 복음은 모세오경과 선지서의 폐지가 아니라, 모세오경과 선지서의 성취다. 따라서 복음은 창조를 전제하고, 성부 하나님의 사역을 존중하며, 하나님의 뜻에 도움이 되도록 존재하는 인간의 삶에 있는 모든 자연적 관계와 일치한다. 복음 자체에서 천국의 선포와 [하나님의] 의는 화해의 복음이며, 십자가의 보혈을 통한 죄로부터의 구속이다. 이 사실이 복음이 반드시 먼저 교회와 선교에서,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모든 것에서 있어야 하는 이유다. 복음은 그 내용을 빼앗기거나, 정치적 강령이나 사회적 강력으로 용해될 수 없다. 오직 이 방식으로 복음은 영원히 모든 것을 초월하는 가치로 유지될 수 있다.
복음은 항상 개혁적으로 작동한다. 복음은 죄책으로부터 자유를 , 마음의 갱신을 따라서 원리상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바른 관계를 회복함으로 가장 위대한 개혁을 창조한다. 그래서 이 핵심에서 복음은 개혁하고 갱신하는 방식으로 모든 지상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헤르만 바빙크, 현대사상 해석, 다함, 203, 228-233. (7장 기독교 원리와 사회적 관계)
스데반의 생각
바빙크에게 있어서 기독교의 사회개혁은 복음의 가치를 돋보이게 함으로써 사회 또는 국가가 갱신되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제도를 기독교화시키려고 하지는 않는다. 또한 기독교는 국가의 질서를 전복하려 하지도 않고 권력이나 정치적 힘에 휘둘리거나 그런 힘을 사용하여 혁명을 이뤄내려고 하지도 않는다. 기독교는 복음의 진수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빛처럼 어두운 곳을 밝히고 소금처럼 정체성을 유지한다. 이것이 기독교적 개혁의 원동력이자 힘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교회를 통해서는 정치 지도자가 될수 없으나 사회기관을 통해서는 정치 지도자가 될수 있다. 이에 따라 네덜란드교회에서는 목사가 일반정치인이 되고자 할 경우 목사직을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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