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수 교수님의 가정에서 보낸 2년은 저에게는 큰 축복이었습니다. 머물 곳 없고 기댈 곳 없던 저에게 당시 그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였지만, 지금 교수의 자리에 있는 저의 입장에 서서 저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과연 나라면 내 집에 가족도 아닌 학생을 들여서 함께 생활할 수 있을까?’ 이는 단지 빈방 하나를 내어주는 정도가 아닙니다. 내 사생활의 모든 부분이 다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한 달 두 달 한정된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한국에 거주하시는 시간 거의 내내 고재수 교수님 가족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외국인 선교사 주거용으로 지은 감천의 집은 그래도 방이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 집이 매각되고 이사를 한 송도의 집에는 방이 부족했습니다. 그 집에서 다소 독립적인 위치의 좋은 방을 저에게 내어주어 저는 지내기가 참 좋았지만, 어느날 우연히 교수님 부부의 침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계단 아래의 창문도 없는 어두컴컴한 창고방을 침실로 사용하고 계셨습니다. 실생활 속에서 이분들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잘 볼 수 있었습니다. 학생에게 더 좋은 방을 내어주고 자신들은 말할 수 없는 불편을 감수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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