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문

한국교회의 미래는 올바른 설교에 달려있다-유해무

V.D.M. 이스데반 2022. 7. 10. 07:31
7. 한국 교회의 장래는 올바른 말씀 설교에 달려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선물하신 으뜸가는 은혜의 방편이 말씀 설교가 아닌가! 하나님이 언약의 책인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언약 백성에게 신실하게 전하는 사역자를 파송하시고 교회를 세우게 하셨다. 말씀의 사역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기에 앞서 하나님이 성경을 통하여 하시는 말씀을 기도하면서 직접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신학의 “학”은 ‘로고스’에서 왔으니, 학문이기에 앞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하나님을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원어인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목사는 이런 사적(私的) 신학의 현장인 골방신학이 있어야 공적(公的) 신학의 현장인 설교단에 올라갈 수 있고 공예배(公禮拜)의 집례자가 될 수 있다. 설교자는 설교단에서 어떤 사적 얘기를 할 자격이 없다. 우리는 한국 교회의 위기를 일차적으로 골방 신학에 기초한 공적 신학인 설교의 위기에서 찾아야 한다.

칼빈 선생의 말처럼, 사역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전파할 때 회중은 그 말씀을 경청해야 한다. 한국 교인들이 설교를 대하는 자세에는 고쳐야 할 바가 많다. 설교자가 교회에서 성령으로 말씀을 선포할 때, 회중은 같은 성령 안에서 말씀을 경청하고 세상으로 파송 받아 엿새 동안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자는 회중이 설교를 잘 이해하도록 별도의 시간을 내어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것은 그들이 가서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며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이었다(마 28:19~20).

그런데 한국 교회는 세례 교인들을 주님의 명령을 따라 성실하게 가르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은 말씀에 굶주릴 수밖에 없고, 교회 안에서의 신앙과 세상에서의 삶이 초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수준에 맞추어 행해지는 주일 설교는 허하기 이를 데 없는 타협이며 직무유기의 결실이다. 설교자와 회중은 말씀과 관련해 하향평준화를 이루어 늘 젖만 찾으며, 딱딱한 음식은 나오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먹을 수도 없다. 이렇게 교인들의 성경 지식이 크게 부족함으로 딱딱한 음식인 설교를 견디지 못하고, 설교자가 강단에서 개그를 해야 들으려 하는 못된 버릇이 교인들에게 생겼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면 한국 교회는 이단과 가톨릭의 침투와 교인 탈취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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