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tiam et pacem in Christo(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먼저 우리가 신조, 신앙고백서, 요리문답서를 가르치고 배우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성경만 읽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규정하는 규범’(norma normans)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1차적인 권위를 가집니다. 성경을 판단할 다른 규범은 없습니다. 반면 신조, 신앙고백서, 요리문답서는 ‘규정된 규범’(norma normata)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규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성경입니다. 그래서 신조는 성경과 같은 1차적인 권위를 가지지 않지만 성경에 충실하고 성경의 진리를 그대로 반영할 때 2차적인 권위를 가집니다. 따라서 규정된 규범은 성경, 즉 규정하는 규범으로부터 판단받고 검토받 아야 합니다.
규정된 규범의 중요성
그러면 교회가 왜 이런 신조, 신앙고백서, 요리문답서들을 규범 문서로 만들고 가르치고 배우게 되었을까요? 주로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교회가 성장해 나가다 보면 이단이 항상 등장합니다. 그래서 첫째, 이단을 분별하고 성경적인 신앙을 ‘변호’하기 위해서 신학자들이 규범 문서들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한편 이렇게 규범 문서들을 작성함으로써 둘째, 정통 신앙을 ‘보존’하고 ‘증진’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규범 문서들을 통해서 성경의 공통된 진리를 규정함으로써 셋째, 교회의 ‘일치’를 이룰 수 있습니다.대표적인 공교회의 신조로서 우리가 주일마다 고백하는 사도신경이 있습니다. 신경의 요체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인격 및 사역을 중심으로 교회,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라는 주제로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이단들도 성경을 사용하기 때문에 성경만 읽겠다고 하는 것은, 즉 신경이나 신앙고백서나 요리문답서를 도외시하겠다는 것은 보편 교회의 참된 믿음을 거부하겠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2차 규범들이 증거하는 것이 바로 성경으로부터 나온 참된 믿음과 삶의 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서 그리고 신경들은 신앙과 경건에서 당대에 가장 출중하고 탁월한 신학자들이 모여서 성경을 중심으로 수일에서 수년에 걸쳐 토론하고 기도하며 작성한 것들입니다. 아니면 개인이나 소수의 사람들이 작성했다 할지라도 마찬가지로 다수의 신학자들이 모인 회의를 통해 공교회적으로 받아들여진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으로 상당히 신뢰할 만한 것들입니다.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시대적이고 윤리적인 이슈들을 제외한다면 신학적인 부분의 대다수는 이미 이전 시대에 상당히 논의되었고 성경적으로 정돈된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 시대에 신조, 신앙고백서, 요리문답서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자료들을 읽고 공부하고 적용하는 일은 신앙생활을 건강하게 하고 영혼을 살찌우는 데 필수적인 일이 됩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성경을 읽으면서 이해하고 해석하는 바가 이전 시대의 출중한 신학자들의 증거에 의해 보편 교회가 인정하는 맥락 안에서 바른길 위에 서 있는지 아니면 자기 자신만의 엉뚱한 사상인지를 평가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목회자들은 이런 유산들을 활용하여 교회에서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성경 해석이 역사적, 사도적, 성경적, 보편적, 정통 신학을 계승하는지를 점검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신자들이 바른 신학을 가지고 바른 신앙생활을 하도록 인도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필자의 모든 주장은 저지대의 신앙고백을 물려받은 네덜란드의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의 아름답고 간명한 진술로 요약됩니다.
“신앙고백은 신자 개인 뿐 아니라 교회 전체에게도 특권입니다. 교회는 믿기 때문에 고백합니다. 교회는 모든 시대 가운데서 고백합니다. 교회는 교회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친구들과 적들에게 알려줍니다(벧전 3:15). 교회의 증언은 많은 물소리와 같습니다(계 14:2). 교회는 모임과 예배와 기도와 찬송과 자비의 사역과 사랑의 은사 가운데 그 믿음을 드러냅니다. 교회는 항상, 어디에서나 고백합니다. 교회는 고백하는 교회 외에는 다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본서에 대하여
‘벨기에 신앙고백’은 ‘네덜란드 신앙고백’ 또는 ‘벨직 신앙고백’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만 여기에서 ‘벨기에’, ‘네덜란드’, ‘벨직’은 모두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그것은 16세기 당대의 기준에서 ‘저지대’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표현들을 하나로 통일하자면 ‘저지대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6세기 중반 당시 스페인의 폭정 속에서 저지대의 개혁 신앙인들은 엄청난 탄압을 받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반(反)정부적 소요를 일으키는 재세례파와는 다르다는 것을 스페인 정부에 호소하고, 성경적 진리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이 개혁교회 신앙인들임을 천명하기 위해 귀도 드 브레(Guido de Brès, 1522-1567)라는 인물이 1561년에 벨기에 신앙고백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 후로 계속 이어진 피의 핍박 속에서 결국 드 브레는 순교하였으나, 이 피 묻은 신앙고백은 살아남아 후대에 전해졌고 저지대 속에서 공적인 신앙고백으로 수납되었습니다. 그 후 국제적 개혁파 총회였던 도르트 총회(1618-1619)에서 국제적인 승인을 받으면서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들 중 하나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벨기에 신앙고백이 도르트 총회 이후 4백 년이 넘어 21세기를 살아가는 조국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소개되었고 근자에 일부 교회들 가운데 설교되거나 가르쳐져 왔습니다. 이러한 시점에 필자는 도르트 총회 회의록(1620)에 수록된 라틴어 본문 벨기에 신앙고백을 처음으로 직역하여 여기에 선보입니다. 한글-라틴어 대조 전문은 출판사 공식 블로그에 별책부록(목차에 삽입된 QR 코드를 통해 pdf 다운로드)으로 제공하였으니 라틴어에 관심 있는 목사님들과 신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https://blog.naver.com/wlpbook/224080091148
『벨기에 신앙고백 해설』은 가급적 간명하고 쉬운 방식으로 다루어 보통의 신자들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읽고 묵상할 수 있게끔 했습니다. 다만 추가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미주(尾註)로 제시하여 참고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해설은 우선적으로 필자가 35회에 걸쳐서 설교한 설교문들로부터 가져와서 쉽게 간추린 것입니다. 학술적 해설이 아니라 이 시대의 일반 신자들을 위한 목회적 해설이므로 ‘벨기에 신앙고백’이라는 말에 생소한 분들이라 할지라도 이 신앙고백이 담고 있는 진리를 충분히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부록 1은 벨기에 신앙고백의 공인 과정에 대한 역사를 알기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포함시켰습니다. 이는 압축본이고 자세한 사항은 별책부록을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록 2와 부록 3은 우리말로는 처음 소개되는 것들입니다. 이는 벨기에 신앙고백의 프랑스어 초판(1561)에 수록된 소네트(부록 2)와 편지(부록 3)를 영문 번역본으로부터 중역(重譯)한 것입니다. 이 글들 속에서 우리는 벨기에 신앙고백이 작성되던 당시의 박해 상황을 파악하고, 우리의 현재 신앙이 공중에 붕 뜬 것이 아니라 역사적 피의 순교를 거치면서 전수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서 우리의 신앙고백 때문에 정부에 의한 피의 박해가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옛 순교 신앙과는 관련 없이 살아도 될까요? 사실 기독교에 어떤 식으로든 위협이 없는 때는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서는 인본주의와 상대주의가 계속 성장해 가고 있고 이는 복음의 진리성과 절대성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우리가 복음의 순수성과 성경적 진리를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우리의 안녕에 그리고 우리의 복지에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개혁 신앙인은 그런 정신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왜일까요? 지금도 피의 순교가 일어나는 북녘땅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과연 우리가 뿌옇게 희석된 진리와 인본주의적 사상을 가진 채 통일을 바라보고 북녘 교회의 회복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이 점에서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절실한 노력은 16세기 저지대의 개혁 신앙인들이 추구했던 것만큼이나 지금 우리에게도 요구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개혁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est secundum verbum Dei)는 개혁교회의 모토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도 붙들어야 할 지침입니다.
감사와 헌정
필자는 본서의 작성에 도움을 주신 몇 분들께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조엘 비키(Joel Beeke) 교수님은 자신의 칼럼을 본서의 서론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헤르만 셀더하위스(Herman Selderhuis) 교수님과 웨스 브레던호프(Wes Bredenhof) 목사님은 벨기에 신앙고백과 관련된 몇 가지 사실들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메일을 통해 도움을 주셨습니다. 특별히 브레던호프 목사님은 부록 2, 3의 영문 자료들을 제공해 주셨고 번역과 게재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또한 본서를 주의 깊게 검토하고 출간을 결정해 준 생명의말씀사와 기꺼이 이 책을 추천해 주신 박재은 교수님, 이승구 교수님, 이정현 목사님, 이태복 목사님께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아울러 늘 기도해 주시는 장인 강병준 장로님과 장모 이희순 권사님 그리고 필자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전해 주셨고 설교자의 정신을 일깨워 주시는 양규식 목사님과 기도로 도우시는 한연희 사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가까이에서 필자의 사역을 격려해 주시는 교동교회 이희준 목사님, 도종원 목사님, 장재훈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모친과 동생의 사역을 늘 응원하시는 누님 내외분과 형님들 내외분들에게도 이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부족한 자의 설교를 항상 열심히 들으며 기도와 설교 준비에 매진하도록 돕는 아내 강은미님에게 이 책을 헌정합니다.
끝으로 R. C. 스프로울(R. C. Sproul, 1939-2017) 목사님의 설교 중 한 토막을 인용함으로 벨기에 신앙고백의 가치가 보편 교회의 한 부분인 조국교회 가운데서도 변함없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것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복음을 개선시킬 수 없습니다! 복음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복음과 타협하지 마십시오. 복음을 변개시키지 마십시오. 복음을 버리지 마십시오. 복음을 폐기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복음을 개선시키려들지 마십시오.”
벨기에 신앙고백 초판 출간(1561) 464주년,
귀도 드 브레(1522-1567) 순교 458주년,
벨기에 신앙고백의 국제적 승인(1619) 406주년을 지나며
압독국 무학산 자락에서
言犬
V. D. M. 이스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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