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승님들 중에는 아르미니우스주의를 가진 목사님이 계신다. 물론 웨슬리안 아르미니우스주의자를 말한다. 통상 복음주의적 아르미니우스주의라고 하기도 한다. 감리교와 성결교 등이 그런 신학체계를 가지고 있다.
내가 아무 것도 모르고 처음 교회를 나갔을 때, 양목사님을 만났다. 그리고 양목사님의 설교 아래에서 회심하였다. 나는 아직도 이분 만큼 말씀 중심의 설교를 열정적으로 하는 분을 만난 적이 없다. 방송이나 책으로는 많이 만났지만 말이다.
물론 이제 나는 그분의 신학 체계를 따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이 분을 존중한다, 자신의 교단 정체성에 맞는 정통파 목사로서 65세에 조기 은퇴하시고 일절 섬기던 교회에 가지 않으신다. 일생 자가용을 가져 본 적이 없으시고, 일생 TV를 사택에 둔 적이 없으시다. 해외여행도 한 번 가신 적이 없으시다. 일생 설교에 영혼 구원이 있다는 신념 아래에서 자신이 주어진 환경(신학적 범위와 지식의 범위) 내에서 설교 준비와 함께 인생을 살아온 분이다.
하나님은 나의 첫 목자로 이 분을 만나게 하셨고, 나는 이분 밑에서 2년간 은혜를 누린 적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소위 말하는 개혁파 목회자이지만, 복음주의 형제들과 목회자분들을 폭 넓게 사랑한다. 그리고 그분들을 존중한다. 그래서 누가 나를 보고 당신은 참된 개혁파 목회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나는 아무렇지 않다. 나는 타이틀에는 별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영혼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관심이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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