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예배의 비극은 더 이상 성경의 강해에 기초한 명료한 통찰력으로 하나님이 드러나지 않는다는데 있었다. 그리고 성령의 임재가 더 이상 실체적으로 이해되지 않자, 참된 예전이 아니라 시각적인 형형색색의 의식이, 명료한 말씀보다는 신비적 요소가, 명확한 교리적 이해보다는 색감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는 교리보다는 드라마가 시대의 풍조가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더 이상 영혼을 풍성하게 하지 못했으며 사람들을 도덕적이며 영적으로 성장시키지 못했다. 영적 공허가 생겨나게 되었고, 침체는 불가피했다.
현재 꽤 오랫동안 우리가 신 중세주의를 향해 미끄러지는 경사면에 있다는 복음주의 내적인 증거들이 존재하여 왔다. 하지만 슬프게도, 하락세를 처음 지적했던 이들은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아니라 자유주의 연구가들과 비평가들이었다.
아동 심리학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이 알고 있는 우리는 교리교육 또는 성경 자체에 대해 관심 갖는 것에는 얼마나 지체하고 있는가! 불쌍하게도, 우리의 몇몇 지도자들은 칼빈 시대 제네바에 있던 한 어린 아이만큼도 기독교 교리에 대하여 알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17세기 스코틀랜드의 외딴 성에 있던 한 소녀가 가졌었던 인간의 근본적 목적에 대하여 일부분만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존 오웬 시대 옥스퍼드의 십대들보다 죄를 이기는 법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듯 보인다.
싱클레어 퍼거슨, 진짜회심, 우리시대, 86-87, 89-90.
'인용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용문]아담과 그리스도의 특별한 위치-바빙크 (0) | 2020.12.17 |
---|---|
[인용문]기독교강요 읽기에 대한 칼빈 자신의 권면 (0) | 2020.12.14 |
[인용문]자연인과 중생자의 차이-바빙크 (0) | 2020.11.26 |
[인용문]교회와 국가와의 관계-브라켈 (0) | 2020.11.08 |
[인용문]예언에 대한 처신-브라켈 (0) | 2020.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