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서 죽어 가던 행악자, 생애 마지막 순간에 예수께 돌이켜 그분의 나라에 자기 있을 자리를 마련해 달라던 그 행악자의 경우는 어떠한가?(눅 23:39-43) 그 행악자는 성화되지 않고 의롭다 여김 받은 사람의 탁월한 예가 아닌가? 분명 그는 성화될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사실 이 익명의 회개자는 성화 없는 칭의 없고 삶의 변화 없는 신분 변화도 없다는 원리의 강력한 증거다. 이 사람이 의롭다 여김 받았다는 사실은 즉각적 변화를 보였다는 점으로 입증되었다. 어째서 그런가? 이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했다. 예수가 주님이심을 인정했다. 예수를 대하는 태도가 멸시에서 존경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는 기도했다. 그뿐 아니라 이제 갓 발견한 자신의 주님을 옆에 있던 다른 행악자가 신랄하게 비꼬자 예수를 옹호하며 그를 질책했다. 인생 최후의 순간에 그는 자신이 의롭다 여김 받은 신자로서 이미 성화의 과정에 들어가서 낙원에서 주님을 뵐 준비를 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그는 성화를 근거로 해서 의롭다 여김 받은 게 아니라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에 근거해서 의롭다 여김 받았다. 하지만 그는 성화되지 않은 채 의롭다 여김 받은 것은 아니었다.
싱클레어 퍼거슨, 거룩의 길, 복있는 사람, 30.
스데반의 생각
이것이 과연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람을 생의 마지막 순간에 영접기도 같은 것을 시켜서 고백한 사람을 구원받은 것으로 간주하기 위한 실례로 사용하는 것을 중지해야 한다. 오직 복음을 순수하게 전하고 기도하고 권고해야 하지만, 이 예를 모든 죽어가는 자들을 위한 일반적인 예증처럼 사용하여 인위적 영접시키기에 활용하는 것은 분명 오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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