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위해 선행이 필요하다는 말은 선행이 구원의 근거라든지 선행에 내재하는 가치 때문에 선행이 구원의 공로가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기보다 선행이 "구원을 소유하는 수단과 방법으로 필요하다"는 말이다. 선행은 우리의 새로운 탄생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다. 우리의 선행은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그리스도인 삶의 항해를 보여 주는 항적 같은 것이다. 칭의와 성화의 논리적 구분을 이해하는 것은 또한 임종 때 회심하는 경우처럼 선행을 할 기회가 명백하게 없었거나 거의 없었던 사람일지라도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브랜던 크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 부흥과개혁사,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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