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로 실용주의는, 우리 종교에 있는 지성적 요소를 무시하고, 신앙고백의 건전성에 관심을 가지지 아니하며, 이단적인 사상에 무관심하고, 신비적인 요소들을 인정하지 않으며, 오직 '기독교 활동들', 곧 자선 활동, 선교, 전도, 영적 훈련, 모든 종류의 교제와 연합 활동(첫째로 주일학교 활동을 들 수 있다)에 빠져 있게 한다. 항상 바쁘며, 항상 무언가를 하고, 특별히 무언가 특별한 것을 하기를 열망한다.
두번째로 감정주의는, 명백하게 두 가지 경로를 따른다. 한 편으로는 더 깊은 감정적인 신비주의적 방식을 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감정과 느낌을 피상적인 방식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이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신앙고백과 진리에 대한 탐구에 대해서는 실용주의자들보다 관심이 없다. 그들은 그들 영혼을 신비주의적인 경험 가운데 잃어버리게 하고, 그들의 감정과 상상력을 자극해 준다면 설교자가 본문에서 떠나 있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셋째로 지성주의는, 그리스도인들의 활동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고 이해도 없다. 이것을 추구하는 이들은 오만하게 모든 종류의 감정주의적 요소들을 경멸하며 신비주의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다른 한편 이들은, 신앙고백과 교리를 고수하면서 성경에 위배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으며, 이단적 사상을 감지하면 비판의 칼부터 드러내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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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나는 메마른 정통과 자기 만족적인 지성주의에 반대하여 심각하게 경고했지만, 기독교의 임무가 하나님의 진리를 품고 간직해서 분명하고 명료한 신앙고백의 개념까지 도달하는 것이라는 데 이견을 달지 않는다.
비록 나는 절제되지 않은 불건전한 신비주의 운동의 오류에 반대하여 경고했지만, 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영혼 속에서 무엇이 진행되는 지 알도록 부름을 입었다는 것과 그들의 마음속을 관찰하는 것과, 그의 영혼 속의 진리의 경험을 알아보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한, 비록 나는 진정한 기독교를 외부적인 활동들에서 찾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서 지적했지만, 아무도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선한 행동을 거부하는 정적주의를 옹호한다고 결론 내리지 못할 것이다.
아브라함 카이퍼, 세 마리의 작은 여우들 중.
발췌: 루이스 프람스마, 그리스도가 왕이 되게 하라, 복있는 사람, 245-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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