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문

슐라이어마허 신학의 네 가지 문제점-김용주

V.D.M. 이스데반 2023. 2. 26. 19:32
첫째, 그는 신학의 원리를 객관적 성경 계시에 세우지 않고 주관적 감정에 둡니다. 그러므로 자기 감정의 변화에 따라 신 인식이 변하게 됩니다.
  둘째, 그는 죄를 결핍으로 봅니다. 이것은 플라톤적으로 사고하는 것입니다. 그는 죄를 우리가 싸워야 하는 세력으로 보지 않고 선의 결핍으로 봅니다. 죄를 결핍으로 보기에 우리가 은혜 의식을 키워서 채우면 된다고 말합니다. 또한 죄를 더 높은 삶에 대한 장애로 봅니다. 즉 그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 아래 팔렸으므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구속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바울의 입장과 완전히 다른 입장을 취합니다. 죄에 대한 이런 낙관적인 입장을 갖다보니 예수님을 통한 구속도 전통적인 신학과는 다르게 봅니다.
  셋째, 그는 예수님이 구속을 결정짓는 분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가 말하는 구속은 죄인이 하나님과 교제를 회복하는 것이고, 예수님은 구속 활동을 통해 우리에게 은혜 의식을 일깨워 그런 교제를 매개해 주는 분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무죄의 완전성으로 그런 교제를 이룬 분으로, 죄에 빠져 그런 교제를 이룰 수 없는 사람들에게 도덕적 감화를 주어 그들의 마음에 구속의 욕망을 일으켜서 신과의 잃어버린 관계를 회복하게 하는 분에 불과합니다.
  그는 인간이 아담의 원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 관계가 되어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 없이는 구속 받을 수 없는 완전한 파멸된 상태에 처한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자기 스스로 죄의식과 은혜 의식을 가지고 구속자를 의지한다면 다시 회복될 수 있는 존재라고 여깁니다. 그가 가장 자신있게 기독교를 구속 종교라고 정의하는 바로 이 부분에서 가장 큰 오류를 범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죄, 예수님, 구속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예수님을 신이 아니라 인간으로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슐라이어마허의 기독교적 신앙 성향은 완전히 실현된 상태에 있는 인간적 신앙 성향과 다를 바가 없으며, 그에게 성육신하신 하나님은 전혀 신적인 구절이 아니라고 비판했습니다. 실제로 슐라이어마허는 "자신이 역사적 예수에 매달려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내 책과 내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역사적 예수를 강조합니다. 그는 예수는 본래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다고 선언합니다.

 

김용주, 자유주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좋은씨앗, 109-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