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중생교리에 관한 2부작으로 <중생이란 무엇인가>와 <이것이 중생이다>를 부흥과개혁사에서 출간해 주었다. 나는 의도적으로 두권 다 동일하게 마지막 부분을 설교에 관한 장으로 마무리했다. 전자에서는 설교가 추구해야할 방향성을 다루었고 후자에서는 스펄전을 모델로 하여 중생교리를 설교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소개했다.
이후 <바빙크의 중생론>을 번역하여 출간하면서 마음에 와닿은 것은 바빙크는 이 책의 마무리를 설교와 관련지었다는 점이다. 바빙크는 중생 교리를 다루면서 회심적 설교와 회중적 설교의 밸런스에 초점을 두었다. 바빙크는 구별적 적용이라는 개혁파 설교의 장점을 구체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결국 거듭나지 않은 사람과 중생한 사람 사이에서 설교가 이 둘에 대한 균형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런 점들을 생각해 보면서 오늘날 중생 교리가 설교와는 관련 없는 방식으로 다루어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특별히 현대에서는 회심적 설교가 상당히 빈약한 상태에 있다. 많은 설교자들이 교회 안에 거듭나지 않은 자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고, 이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거듭나야할 존재라는 인식을 하지 않은 채 설교하고 있다. 그리고 교훈적 혹은 도덕적 설교마저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도적덕 교훈을 주는 차원에서만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것은 결코 기독교적인 설교가 될 수 없다.
이런 빈약한 설교 속에서 각종 프로그램과 강사 초빙으로 강단에 변화를 주려고 애씀으로써 현대 교회는 점점 약해져 가고 있다. 그나마 개혁신학을 탄탄하게 배우고 깊이 있는 강해 설교를 해 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수의 목회자들이 각처에서 애쓰고 있음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강단의 변화 없이 교회의 개혁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이 교회의 갱신을 위해 가장 먼저 강단을 새롭게 하실 것임은 명확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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