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문

가장 엄숙한 명령-R. C. 스프로울

V.D.M. 이스데반 2019. 2. 19. 19:29

가장 엄숙한 명령

 

R. C. 스프로울

 

저는 교회 구성원들인 부모들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제 자녀들과 신학적인 혹은 종교적인 토론을 결코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우리가 집에서 그들을 세뇌시켜왔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진정으로 믿게 되어진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믿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들이 부모의 어떤 전통에 묶인 노예들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죠. 저는 그들이 실제 있는 대로를 경험하기를 바라고, 그들이 증거로부터 끌어낸 결론이 무엇이든지 거기에 이르기를 바란답니다.”

 

이런 정서들은 저를 얼떨떨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6장 4-9절을 잠시 고려해 보죠.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제가 위의 본문에 대하여 발견한 놀라운 것은 이 본문이 예수님께서 가장 큰 계명이라 칭하시는 것에 따라 우리의 자녀들을 가르치려는 의무에 참으로 근접하다는 것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5절, 마 22:36-40 참조).  우리의 창조주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계명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바로 다음의 명령을 신명기 6장에서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하나님의 율법이 우리 마음에 있어야 하고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쳐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부모들이 주님의 계명을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이런 것들을 배우도록 어떤 장소로 자녀들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책임은 부모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더욱이 신명기 6장은 “너희는 무심하게, 이따금, 간혹 자녀들을 가르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신명기 6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7-9절).

 

이것은 주님의 계명들이 매우 부지런하게 가르쳐져서 매일, 어디서나, 심지어 집안 어느 방에서든지 가르쳐지게끔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성경에서 이 보다 더 엄숙한 명령이 발견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신성한, 거룩한 의무로써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번 해야할 어떤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책임을 교회에 떠넘겨서는 안됩니다. 성경에 따르면, 자녀 교육을 위한 최우선의 책임은 가족이며, 부모입니다. 그리고 이 전통은 대대로 이어지도록 명령되어졌습니다.

 

진보적인 시대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통에 대하여 경멸을 가지고 바라봅니다. 전통은 반동분자와 시대에 발맞추기를 거절하는 보수주의자들에게나 해당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성경을 볼 때, 전통에 대해 말할 것이 많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어떤 것은 부정적이고 어떤 것은 긍정적이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국가와 이스라엘의 선생들에게 내리는 심판들 중 하나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전통으로 대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인간의 전통이 성경의 자리를 차지해 버린 것이죠. 이 오류 때문에, 우리는 전통과 결코 소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뛰어들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약으로 들어오면, 우리는 인간의 전통과 하나님의 전통 사이에 만들어진 구별을 발견합니다. 예를 들어, 바울 사도는 자신이 교회에 선포하는 메시지는 그 자신의 생각으로부터 고안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전통을 교회에 전달했노라고 주장합니다. 헬라어 “파라도이스”는 “전통”이라는 말인데, 이것은 “선물”에 대한 그리스 용어 및 “함께 따르는” 또는 “전수하는”이라는 뜻을 가지는 접두어 “para”와 같은 어근으로부터 나옵니다. 문자적으로, 성경에 나오는 “전통”의 뜻은 어떤 선물을 전수하는 것입니다. 전수되는 선물은 하나님의 지식에 대한 선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신성한 성경 안에서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우리에게 말하도록 영감주신 그분의 말씀 안에서 그분 자신에 대하여 계시하신 것이죠.

 

이 선물을 전수하는 것은 부모로서 나의 책임이고, 부모로서 당신의 책임입니다. 만일 당신이 부모가 아니라면 이 선물을 전수하는 교회와 부모들의 사역을 지지하는 것이 당신의 책임입니다. 우리의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안으로 인도하는 것은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소명입니다. 진실로, 주님을 경외함과 주님의 훈계 안에서 언약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보다 교회 안에서 부모들과 어른들에게 주어진 더 엄숙한 명령은 없습니다.

 

R. C. Sproul, “The Most Solemn Mandate”, Tabletalk, Ligonier Ministries and R. C. Sproul ed. (Sep. 2016), 4-5. 번역 및 게재 허가득. 번역: 이스데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