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가는교회 이야기

청년과 네번째 성경공부

V.D.M. 이스데반 2025. 3. 9. 16:41

주일 점심 후 근래에 새로온 청년과 네번째 성경공부를 진행했다. 오늘은 <참 구원의 길> 4과 중생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믿음과 중생의 선후 문제를 화두로 던졌다. 그리고 영접기도의 문제를 제기했다. 알미니우스주의와 개혁주의의 구원의 관점을 대조하며 설명했다. 그리고 중생의 의미를 제시했다. 청년은 자신이 예전에 전도훈련을 받으면서 영접기도하고 이런 게 과연 구원받는 것과 관련이 있는지 의아해 한 적이 있었는데, 이 의아심이 해결되었다고 했다. 청년은 이 문제를 진중하게 받아들이면서 이해했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사영리의 확장과 한국교회의 전도유형의 전반적인 상황으로 연결시켰다. 그리고 오직 은혜의 복음이 이 지점에서 교회 안에서 흐트러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청년은 놀랍게도 이 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긍정했다.

  청년은 관련하여 몇가지 질문을 했다. 죽을때까지 복음을 거부하고 죽은 사람은 선택받지 못한 사람인가? 아타나시우스신경에서 '성자께서 인성에 따라서는 성부보다 열등하다'는 점은 무엇을 가리키는가?(자라가는교회는 예배시 서방교회 3대신경을 한달씩 번갈아 고백한다) 성경에서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다는 말에서 '모든'은 무슨 의미인가? 성부의 예정과 성자의 속죄와 성령의 중생사역을 경륜적 삼위일체로 설명하자 청년은 '경륜적'이란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물었다. 청년은 진지함과 물음을 가진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인것 같다. 상당히 열띤 공부시간이 되었다. 나는 청년에게 나의 저서 <중생이란 무엇인가>와 <참 구원의 길> 전도지를 선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