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산책

노아와 아브라함의 구원 방식

V.D.M. 이스데반 2019. 3. 13. 17:36

아래는 모교회에서 사역할 때 어느 권사님 한 분이 나에게 준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이는 구약 백성들의 일반적인 구원의 방식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질문

노아와 아브라함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았는가?

 

답변1

아니다. 어떤 측면에서 말인가? 노아와 아브라함때는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나시지도 않았고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알지 못했으므로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믿고 구원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론1

위의 답변은 노아와 아브라함이 우리와 같은 분량의 그리스도에 대한 실제적인 지식이 없었다는 관점에서만 인정된다. 그러나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고, 이 사실은 구약과 신약이 다를 수 없고, 따라서 아담과 노아와 아브라함의 구원이 21세기를 사는 나의 구원과 다를 수 없다. 이것은 성경을 통해서 볼 때 명백하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영원토록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한가지 차이점은 제2위 성자 하나님이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으로만 존재하셨고, 지금 우리에게는 육신으로 오신 분으로도 존재하신다.

  그러나 중보자로서 그리스도의 2천여년 전의 사역은 나에게 후망적(retrospective)으로 구원의 효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노아와 아브라함에게는 전망적(prospective)으로 적용된다. 이 점은 다음의 성경 구절을 통해서 지지된다.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내가 그리스도를 알고 믿어서 구원받았다면, 노아와 아브라함은 그리스도가 예표된 정황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점에서 차이가 있다.

  구약 성경에는 문자적으로 노아와 아브라함이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기 전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즉,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풍성함이라는 측면에서 분명히 구약과 신약간에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의 본질적인 차이는 아니다. 이것을 구약과 신약의 점진적 계시의 측면에서 우리는 이해한다. 노아가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다(히 11:7)는 말씀은 이 사실을 증거한다.

 

반론2

하지만 노아에게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없었고,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지 않았는가?

 

답변2

노아에게 그리스도는 계시되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할 수 없다. 노아는 홍수를 대비하여 방주를 지었다. 여기에서 방주는 그리스도의 모형이다(예표론). 노아는 그리스도의 실체는 볼 수 없었고, 믿을 수 없었지만 새창조의 주인이자 영생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모형인 방주를 통해서 희미하게 그리스도를 인식할 수 있었다. 이것이 히브리서 11:7이 함축하고 있는 뜻이다. 노아의 홍수는 심판을 의미하고 방주는 바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의미한다. 즉, 노아 이후에 새롭게 창조된 지구의 상황은 바로 그리스도를 통해 새창조, 영생, 구원, 회복이 있음을 예표한다.

  그러므로 노아에게 있어서 우리만큼 분명한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은 없었고, 직접 믿을 수는 없었지만 노아는 방주를 보면서 그리스로를 어렴풋하게 보았고, 약속을 따라 방주를 지음으로써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다(히 11:7). 이 말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리스도가 예표된 방주를 지음으로써 후대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미리 적용시켜 주셨다는 의미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선취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노아에게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희미하게 있었고, 노아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약속의 말씀을 믿은 것(창 7장 이하)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것과 본질에서 같은 것이다.

 

반론3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도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답변3

노아 이후 점진적 계시가 조금 더 있다. 아브라함에게는 오히려 노아 보다 조금 더 분명하게 그리스도가 계시되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창 12:3). 놀랍게도, 그러나 정당하게도 바울은 갈 3:8에서 이 사실에 대해 언급하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창세기 12장의 약속은 15장에서 재차 확인되고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기록한다(창 15:6). 그리고 좀 더 지나면 창 22장에서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창 22:18에서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의 이야기 자체 속에서도 점진적 계시가 있다. 너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것은 곧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서 이방인을 포함한 택자들의 구원을 의미한다. 창세기 15장에 오면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시면서 하늘의 별과 같이 자손이 많을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상속자"로 구체화시킨다. 그리고 이후에 "이삭"이라는 아들로 이것은 더욱 구체화된다. 창 22장 이삭 제물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의 가장 강력한 예표로써 그리스도를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창 22:18에서 다시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하신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자신의 여정 속에서 자기 자신의 후손으로 올 자가 만 백성의 구원자가 될 것임을 하나님으로부터 점차적으로 교육받은 것이다.

  물론 아브라함도 우리가 가진 것 만큼 명확한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은 없었지만, 이미 언급한 것처럼 아브라함에게도 그리스도가 예표로 계시된 것임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다. 또한 바울은 로마서 4장 18절 이하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자손의 번창과 이삭의 출생=이는 곧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예표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의롭게 하기 위함이라고 확언한다.

  종합적으로, 아브라함에게는 오히려 노아보다 더 분명하게 그리스도가 계시되었다고 성경을 통해서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비록 아브라함도 그리스도를 직접 알고 믿은 것은 아니고, 예표적 정황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것이나, 이 믿음이 우리의 믿음과 본질에서 차이가 있지 않다. 역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선취하게 하셨다.

 

결론

1. 노아와 아브라함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우리만큼 풍성하지는 않다.

2. 그러나 노아와 아브라함에게도 그리스도가 예표(방주, 이삭, 네씨)로 계시되었다.

3. 노아와 아브라함은 우리가 믿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직접 믿은 것은 아니다.

4. 그러나 그들은 예표속에서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믿었으니, 그 믿음 속에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미래의 구속 사역을 선취시켜 주셨다.

5. 이것은 지금 우리가 믿음으로 2천여년전 "오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후취하여 받는 것과 본질상 동일하다. (또한 우리는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본다. 이것은 지금 우리에게 희미하게 보이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으로 우리는 견고하게 믿는다. 이 사실이 바로 구약 시대 택자들이 그리스도의 초림을 바라본 것과 유사한 양상이라 할 것이다.)

6. 따라서, 노아와 아브라함의 믿음과 우리의 믿음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7. 결론적으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로 구원받는 다는 사상은 구약과 신약에서 동일하다고 말함에 틀림이 없으며, 이는 구약과 신약 전체가 동일하게 증거하고 있는 바다.

8. 구약 백성의 구원과 관련된 논지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신학적 교리 및 기법은 영원전 구속 언약(화평의 협의), 점진적 계시, 구속사적 맥락, 예표론, 신앙의 유비 등이다. 이는 곧 노아, 아브라함 외의 여타의 구약 인물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관련 신앙 고백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8장 6항

비록 구속 사역이 그리스도의 성육신 이후에 실제로 그리스도에 의하여 주어졌지만, 구속 사역의 능력, 효력 및 혜택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여자의 후손이자 창세로부터 죽임당한 어린 양으로 계시되고 표징된 약속들, 예표들 및 희생제사들 안에서 그리고 그것들에 의하여 창세로부터 이어진 모든 시대 속에서 택자들에게 전달되었으니,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갈 4:4-5, 창 3:15, 계 13:8, 히 13:8)

 

생각할 점

지금 우리가 중생하여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면, 구약백성도 그렇다고 해야 한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역사다. 우리의 믿음도 구약 백성들의 믿음도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적인 믿음 속에는 곧 영원 속에서 계획된 삼위일체 간의 구원의 협의가운데 이미 그리스도의 구속이 전제되어 있다. 중생의 은혜 역시 그리스도의 구속의 성취안에 주어진다. 이런 점에서 구원은 타락한 내 의지로 믿어서 된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이나 노아가 믿었다는 표현들도 사실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이다.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여 역사하신다. 다만 그 믿음을 부여하신 시점이 그리스도 오시기 전과 후일 뿐이지 믿음을 주신 하나님은 동일하신 하나님이요, 그 믿음도 동일하다. 이 점에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도 구약 백성들에게는 선취된 것이요 우리에게는 후취된 것일 뿐 본질에서 차이가 나지 않는다. 믿음도 동일하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본질적 적용도 동일하다. 그러므로 오직 그리스도안에서,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얻는다는 고백은 성경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확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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