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빌리 그레이엄의 명과 암-배덕만, 이강일

V.D.M. 이스데반 2019. 5. 7. 11:59

링크: 빌리 그레이엄의 명과 암

 

 

'미국의 목사', '복음주의 대부'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목사의 장례식이 3월 2일(현지 시각) 그의 고향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서 엄수됐다. 99세 일기로 2월 21일 노스캐롤라이나주 몬트리트 자택에서 별세한 그의 시신은 빌리그레이엄도서관에 안치됐다가 2월 28일~3월 1일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명예 조문을 받은 후 다시 샬럿으로 돌아왔다.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한 전·현직 미국 대통령이 그를 조문했으며, 미국 주요 매체들은 그의 장례를 연일 보도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작은 도시 샬럿에서 1918년 태어나 한평생 복음 전도자로 살았던 그의 삶은 명암이 깊다. 그는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 목사'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2억 명에게 직접 설교했으며, 위성·라디오 방송으로 메시지를 들은 사람까지 포함하면 22억 명이 넘는다고 전해진다. 복음주의 부흥을 이끌었다고 평가를 받지만, 미국 보수 우파와의 긴밀한 관계로 정교 유착 비판을 받았으며, 복음을 단순화해 개신교를 지나친 성장주의로 나아가게 했다.

 

빌리 그레이엄은 1939년 남침례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1943년 휘튼대학교를 졸업한 후 본격적 활동을 시작했다. 1940년대 미국 기독교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분리주의·반지성주의적 태도로 고립을 자처하는 근본주의에 대한 반응으로, 보다 열린 태도로 기독교를 알리겠다는 신복음주의자들이 나타난 것이다. 신복음주의 운동은 대중화를 위한 아이콘이 필요했고 빌리 그레이엄은 맞춤한 인물이었다.(전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