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문

칼빈의 설교-브루스 고든

V.D.M. 이스데반 2019. 5. 31. 08:20
오늘날 교회의 엄숙하고 조용한 분위기와는 달리, 16세기 설교는 선술집에서 말하는 것과 비슷했다. 설교자는 짖고 있는 개, 울고 있는 아기, 잡담, 계속 왔다 갔다 이동하는 사람, 심지어 주먹 다툼과도 경쟁해야 했다. 이들은 참석한 이들에게 설교자를 존중하라고 요청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수단은 목소리였다. 바젤의 종교개혁자이자 널리 존경받는 학자 요한네스 외콜람파디우스는 목소리가 약해서 강단에서는 무력했다. 칼뱅이 설교했던 원고는 존재하지만, 문제가 많다. 칼뱅의 설교를 기록한 이들이 있었지만, 그런 기록으로는 "아마 이렇게 들렸을 것이다"라는 식의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원고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이 설교했고, 주로 성경 한 권만 앞에 두고 설교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삶의 순간에 적용했듯이, 순전한 즉흥성이 경험의 본질적 일부이기도 했다. 또한 시간의 문제이기도 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수많은 일을 감당해야 했기에, 칼뱅은 시간을 두고 설교를 준비하는 사치를 누릴 수 없었다. 그래서 즉흥 설교를 할 수밖에 없었다.

 

브루스 고든, 칼뱅, IVP, 516-517.

 

스데반의 생각

16세기의 설교 풍경이 과연 그렇게 유럽 전 지역에서 천편일률적이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격동기였으므로 충분히 있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은 든다. 이 부분에 대한 객관적 역사적 자료가 충분한지 궁금하다. 현존하는 칼빈의 설교 자료가 칼빈의 설교에 대한 짐작 정도로 여길 수 밖에 없는 것인지도 부루스 자신의 추측이 아닐까 싶다. 칼빈이 설교 원고를 쓸만한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는 점에는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과연 그렇게 '즉흥적인' 설교였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칼빈은 치밀한 사람이었고, 설교 원고는 준비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강단에 서기전 자신이 설교할 부분에 대한 일정한 숙고는 있었을 것으로 사려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