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문

신학하는 자의 자세-이동영

V.D.M. 이스데반 2021. 7. 7. 23:46
명심해야겠거니와, 우리의 신학은 도상에 있으며 아직 본향에 도착하지 못한 나그네의 신학이기에 부분적이고 미완성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신학은 하나님 자신의 신학(원형의 신학)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모방의 신학을 원형의 신학과 감히 비교해보면 그것은 터무니없이 빈곤하고 빈약하며 인간의 오류와 모순의 그림자가 드리운 불완전하고 불명료한 신학입니다. 그런 모방의 신학 속에서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현시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의 전문가인 한병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하나님 지식은 하나님 자신의 지식도 아니며, 천사들의 지식도 아니며, 하늘에 있는 의인들의 지식도 아니며, 그리스도 예수의 지식도 아니며... 겨우 인간의 거짓되고 부패하고 유한한 상태 속에서 각자에게 부여된 한 줌의 지적 능력을 따라 심각한 기복을 보이는 불안하고 혼탁하고 불분명한 그런 지식일 뿐인데 그 변변찮은 지식조차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간주하고 구원의 수단으로 여겨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우리가 얼마나 큰 은혜와 긍휼 속에서 진멸되지 않고 있는지를 믿는다면 어떠한 경지에 오른다 할지라도 교만의 고개를 빳빳하게 세워서는 안 되며 겸손의 허리를 늘 숙여야만 한다는 당위성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한병수,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 서론, 부흥과개혁사, 223-224)

그러기에 신학하는 우리의 자세는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겸손일 수밖에 없습니다. 헤르만 바빙크도 무릇 신학자는 어린아이 같은 겸손함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신학을 저택에 비유하여, 신학이라는 저택의 현관 입구에 이런 글귀가 쓰여있다고 묘파했습니다. "하나님이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셨다(마 11:25)." (헤르만 바빙크, 개혁교의학 1, 부흥과개혁사, 21)

 

전체인용: 이동영, 신학레시피, 새물결플러스, 5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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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칼빈과 겸손

우리 철학의 근본은 겸손이라고 한 크리소스토무스의 말은 나를 항상 즐겁게 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은 더욱더 그러했다. "어느 수사학자는 웅변의 규범들 가운데 첫 번째가 무엇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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