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우리는 다음과 같이 아우구스티누스가 가르치고 있는 것이 가장 참되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은혜는 의지를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회복시키다." 왜냐하면 다음 두 가지는 서로 가장 잘 부합하기 때이다. 사람의 의지는 그것의 허물과 사악함이 교정되어 참다운 의의 규범을 지향하게 될 때 회복된다고 일컬어진다. 그때에는 또한 새로운 의지가 사람 안에 창조된다고 일컬어진다. 왜냐하면 사람의 의지는 너무나 사악하고 부패해서 완전히 새로운 천성을 입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존 칼빈, 기독교강요 2, 생명의 말씀사, 175(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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