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앙

엘의 죽음(창 38:7)에 대한 주석-칼빈

V.D.M. 이스데반 2022. 2. 24. 16:19
우리는 장수가 하나님의 은사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는 것을 안다. 또 그것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결코 하찮은 명예가 아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에 오래 살면서 날마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경험하면 할수록 그가 여호와께 더 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삶 속에는 많은 불행이 꽉 들어차 있지만 그런 불행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은 여전히 빛난다. 즉 그는 우리를 자기 자신께로 초대하시며 자신의 지식으로 우리를 연단하시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는 우리를 존귀로 장식하셔서 세상에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우리의 권세에 복종시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비의 행위로서 인간의 수명을 길게 하신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따라서 악인이 어린 시절에 죽임을 당하는 것은 그들의 악에 대해 형벌이 부과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여호와가 하늘에서 심판을 선언하시는 것과 같다. 그것은 그들이 땅의 지탱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으며 하늘의 빛을 공유할 자격이 없다는 심판의 선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존속시키는 한 그의 은택을 명상하도록 힘쓰자. 이것은 각자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생명을 인하여 그에게 더욱 즐거이 찬양을 돌리도록 노력하게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오늘날에조차 비명횡사는 하나님의 채찍과 저주로 간주되고 있다. 그리고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은 저희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라(시 55:23)는 교훈은 참되다. 그러나 율법 아래서는 하나님께서 이 심판을 더 충분히 행사하신다. 그때는 장래의 생명에 대한 지식이 비교적 모호하던 때였다. 
    이제는 부활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더욱 명백히 나타나기 때문에 죽음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옳다. 우리들과 하나님의 옛 백성 간의 이런 차이는 다른 데에서도 주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수명을 누리는 자가 여호와께서 기뻐하고 열납하시는 자로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타락자의 형벌을 더 악하게 하시기 위해 그들의 생명을 길게 하신다. 그러므로 장수가 복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규칙이 될 수가 없다.
    우리는 가인이 아벨보다 몇 세기나 더 오래 살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자기의 현세적 혜택을 끊임없이 골고루 베푸시진 않으신다. 반면에 그는 항상 동일한 규칙에 의해 현세적 형벌을 집행하지도 않으신다. 그러나 현재의 생에 관한 한 형벌과 보상의 확실한 범례가 우리 앞에 제시되어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더우기 성의 타락에서 연유하는 현세의 불행들은 하나님의 최초의 그리고 특별하신 은혜를 꺼버리지 못한다. 반면에 그 자체가 하나님의 저주인 사망도 초자연적인 치료로 말미암아 택함받은 자의 구원에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못한다.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첫 열매가 주어진 이후부터는 급속히 생명이 꺼지는 자들도 결코 그 가치가 저하되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생명과 사망의 주관자가 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의 죽음에서 하나님의 복수는 너무도 뚜렷하여 땅도 그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낸 것으로 보일 수 있었다.

 

존 칼빈, 구약성경주해 2, 신교출판사,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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