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문

십자가형과 관련한 자신의 올바른 위치-러틀리지

V.D.M. 이스데반 2022. 3. 16. 07:22
고린도 교회의 회중은 십자가형과 관련한 자신의 올바른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 교회는 중요한 시험 사례 중 하나다. 그들은 자신을 십자가 에 위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마치 이미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 것처럼 자신들을 십자가 너머에 위치시키거나(고전 2:15, 14:37의 신령한 자), 고난이 그들 뒤와 아래에 있는 것처럼 자신들을 십자가 위에 위치시켰다(고후 12:11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 바울이 판단하기에는 이 문제들이 고린도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이 부족한 이유였다. 그것이 바로 바울이 유명한 고린도전서 13장을 쓴 이유다("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1:37). 감상적이고 지나치게 "영적인 사랑은 십자가에서 나타난 그리스도의 지속적이고 무조건적인 아가페를 실천할 수 없다. 오직 십자가형의 관점을 통해서만 세상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과 대조되는 기독교의 사랑의 본질을 볼 수 있다. 바울에 따르면 기독교 공동체는 십자가가 현존하는 모든 제도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믿음을 요구하는 곳에 올바로 위치할 필요가 있다.

플레밍 러틀리지, 예수와 십자가 처형, 새물결플러스, 101.

 

스데반의 생각

십자가 '너머'에 있는 사람, 즉 나는 신령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십자가 '위'에 있는 사람, 즉 나는 엄청난 일을 감당하는 사람이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 둘은 모두 영적인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이들에게서 아가페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십자가 안에 있는 사람은 자아가 죽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말할 것이다.  과연 나는 자신을 십자가형 어디에 위치시키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