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목사님이 쓰신 책을 읽었다. 교회론을 다루는 목회적이고 실천적이며 교훈적인 책이다. 좋은 책이다. 세례의 조건에 관한 몇 가지 표현들은 엄밀함에서 다소 멀어진듯 해서 여기에 나눈다.
"삶의 열매를 통해 중생과 거듭남의 확인없이" 세례를 베풀지 않아야 한다.
"교회가 세례를 베풀려면 반드시 성령세례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인 세례도 역시 회심하고 중생하였다면 교육과 시취문답을 거져 그때마다 세례를 베풀어야 합니다."
스데반의 생각
이 표현들은 세례의 신중함을 다룬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그렇게 이해하면 무리없는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개혁교회에서 세례받는 조건이 중생은 아니다.
세례받는 조건은 신앙고백과 그에 따르는 순종의 행위 여부다.(웨민 소요리 95)
왜냐하면 중생은 사람으로서 완전하게 판별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리고 그 신앙고백과 순종의 행위가 반드시 중생했는지의 여부를 우리에게 완전히 알려주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세례의 조건은 중생이 아니라 신앙고백과 순종의 행위의 유무에 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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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techism.tistory.com/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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