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정론은 본말이 전도된 조심성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억압해서도 안되고 주제넘은 무모함으로 말미암아 호기심으로 캐물으려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도리어 예정론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해서 건전하고 지혜롭게 가르침으로써 두 가지 위험한 암초, 즉 한편으로는 계시된 일들에 대해 의도적으로 눈을 감고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고 하는 "가장된 무지", 다른 한편으로는 신비에 속한 모든 일을 어떻게든 알고 이해하고자 하는 "근거 없는 호기심"을 피해야 한다. 예정론의 가르침을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첫 번째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부족함의 죄를 범하는 것이고, 이 신비에 속한 모든 것을 면밀하고 정확하게 알려고 하여 하나도 남김없이 다 들추어 보고자 하는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지나침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우리 정통 진영에서는 이 두 부류에 반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해서 건전하게 가르치기만 한다면, 예정론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프란키스쿠스 투레티누스, 변증신학강요 1, 부흥과개혁사, 507-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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