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허용이 용어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적어도 원리의 측면에서 의지의 적극적 행위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죄에 관여하는 것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을 마치 신적 의지가 죄를 정확히 자신의 의지의 대상으로 삼는 것처럼 이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지는 오직 선한 것만을 대상으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악한 것 자체를 대상으로 할 수는 없고 단지 선한 목적을 위해 악한 것을 허용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죄가 행해지기를 원하는 것이아니라 단지 죄를 허용하고자 할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죄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해서, 선한 목적을 위해 죄를 허용하고자 하는 하나님이 그 수단인 죄 자체를 원한다고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서로 협력해서 최종적인 목적을 만들어 내기 위한 원인과 결과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계기로 삼는 질료와 대상이라는 의미에서 죄를 수단이라고 부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죄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보다는 가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수단일 수 없고, 오직 악에서 선을, 어둠에서 빛을 이끌어 내는 하나님의 지혜로 말미암아 비본질적으로 수단이 되는 것일 뿐이다.
프란키스쿠스 투레티누스, 변증신학강요 1, 부흥과개혁사, 775.
스데반의 생각
하나님이 죄를 허용하셨다고 해서 죄 자체를 원했다고 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의도하기 위해 죄를 허용하셨다고 하여도, 하나님이 죄를 원하신 것은 아니다. 죄가 하나님의 섭리에 기여했다고 해도, 하나님이 죄를 선한 것으로 수용하신 것이 아니다. 죄는 여전히 죄이며, 여전히 악할 뿐이다.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죄 자체를 원하는 것도, 죄를 선한 것으로 수용하는 것도 불가하다. 다만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죄 마저도 선한 결과로 이끄시는 도구일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이 죄가 하나님의 선한 목적에 기여하도록 일어나는 것은 허용했어도, 죄 자체의 악함을 좋다고 보셨거나 그런 악함을 원해서 허용하시지는 않았고 그러실 수도 없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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