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대 신대원을 졸업한 사람 중에도 사영리를 붙들고 있는 경우가 있다. 조국 교회가 이 사슬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통일의 문이 열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신학교-전도-교회간의 괴리를 보게 된다. 이론과 실천 사이의 괴리다. 국내의 수 많은 신학자들이 마땅히 내야할 소리를 내지 않는 까닭이다. 가장 실천적으로 파고들어 교회를 장악하고 있는 이 쪽지에 대하여는 공통적으로 침묵하고 있다.
개혁파 정통주의는 이론과 실천의 조화를 항상 강조했다. 그들은 사변이 아니라 신학과 함께 가는 경건을 붙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사변에 빠진 것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껍데기를 활용하여 올바른 신학을 세우고 '경건주의'가 아닌 성경적인 경건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래서 신학과 실천의 조화를 중점에 두었다. 신학의 강조점이 예배, 전도, 설교, 삶, 가정, 일터, 사회 속으로 그대로 적용되었던 것이다.
*관련 자료
사영리의 허접함
사영리 책자를 오랜만에 다시 들추어 본다. 그 내용은 너무 부실하여, 만일 이 쪽지의 내용을 그대로 읽어주고 '영접기도'로 이끌어 결신자를 만들어낸다면 이것은 거의 조작에 가깝다. 2원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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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세대별 대표적 전도지들에 대한 소고: 『장원 양우 상론』, 『사영리』, 『참 구원의
*관련링크 장원 양우 상론(공역: 김홍만)(실천신학-전도)김홍만 교수님으로부터 장원 양우 상론 원고를 받고, 이것을 현대어로 재번역 해나가면서 이 책이 가진 가치로 볼 때 출간될 것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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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샌디맨주의(조직신학-구원론)
개혁주의 중생교리를 차단시켜온 신샌디맨주의에 대한 논문임.게재 논문집: 영신논단 2014년 제5호, 119-147. 관련링크 샌디맨주의-로버트 스트리벤스(조직신학-구원론)샌디맨주의에 대한 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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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접기도-이승구
스데반의 생각이승구 교수님의 영접기도에 대한 해설은 건전하다. 다만 본인은 이승구 교수님의 해설에 동의하면서도 좀 더 무게 중심을 다르게 두면서 첨언하고 싶다. 즉 '영접기도'라는게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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