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의 사건과 정황을 읽을 때 21세기 한국교회의 맥락에서 평가하고 재단할 경우 편향성이 생긴다. 교회사의 사건과 정황은 당시의 지리적 역사적 정치적 맥락 속에서 읽어내야 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장점을 현재에 취하고 단점을 거울로 삼는 취사선택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한발 더 나아가 교회사는 하나님의 섭리의 시각에서 읽어내야 한다. 역사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관점을 놓치면 인간적인 옳고 그름의 잣대가 작용하게 되고 역시 편향성이 생긴다. 보편 교회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로 교회사를 읽어낼 때 나의 위치를 올바르게 평가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치우치지 않게 그려볼 수 있다.
루터는 이래서 틀리고 칼빈은 이래서 옳다는 식의 평가는 위의 두 가지 관점이 결여된 것이다. 루터는 루터의 정황이 있고 칼빈은 나름대로의 정황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두 인물을 그 상황 속에서 쓰셨다. 맥락에서 교회사를 읽는 것은 당연하지만, 섭리의 시각에서 교회사를 들여다보는 것은 이제 시작한 것 같다. 그만큼 성장한 것인가? 그렇다. 그러나 아직은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가장 위대한 신학자들은 항상 하나님의 섭리 앞에 무릎꿇는 겸손을 배양했다. 섭리는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릎꿇는 것이다. 교회사를 하나님의 섭리의 렌즈로부터 벗어나서 보면 반드시 빗나가게 되어 있다. 신학자들의 교만은 자신이 연구한 것만이 바르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 일어난다. 그러나 교회사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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