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에 있어서 라틴어 해석 능력은 필수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국내 신대원 과정에서도 라틴어 과정이 필수로 개설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서방신학의 역사를 주요 흐름으로 따르는 현대 개신교 목사라면 라틴어의 초보적인 능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국내에 기독교강요 번역본이 나와 있지만 라틴어 원전에서 제대로 번역된 번역본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라-영 번역본에서 이중 번역한 경우에는 원래 영어 번역본에서 역자의 첨가/수정이 원문에 부합되지 않게 된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전체적인 문맥을 흐리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러나 각 문장이 가지는 정확성을 생각한다면, 번역본을 라틴어본 처럼 신뢰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학술 논문의 경우에는 라틴어본이 있다면, 라틴어본을 직역하여 인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타당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기존에 라틴어 직역본이 여러권으로 나온 것이 있지만 신뢰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본인의 생각에는 축자역에 가까운 번역본이 나오는 것이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에게는 더 나을 것이다(문병호 교수님의 기독교강요 직역본이 드디어 나왔다!). 그러나 또한 현재의 중역본들도 나름의 역할을 해 주고 있으므로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 의미에서 성경 원어인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손에서 놓을 수는 없다. 어떻게든 이것을 붙들고 가야하는 것이 목사의 임무다. 번역 성경만 가지고 전하기에는 때때로 한계가 있다. 원어가 가지는 뉘앙스는 원어로 읽을 때에만 파악되는 경우가 꽤 있다고 봐야 한다. 언어는 반복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저 헬라어, 라틴어, 히브리어와 함께 살다가 가는 것이 목사의 인생의 한 면이라고 봐야 한다. 스펄전과 동시대를 살았던, 그래서 스펄전의 명성에 가려졌던 탁월한 3대지 설교자 알렉산더 맥라렌은 매일 오전 30분씩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평생 공부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손을 놓치 않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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