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교회 안에서 대부분의 교회에서 부목사라는 역할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는 직분이 아니다. 사도행전 6장에 배치되는 상황이다. 수련기간은 전도사 혹은 강도사 기간에 종료된다. 목사로 안수받은면 그 때 부터는 목사다. 목사는 목사를 거느릴 수 없다. 이것이 장로교 정치의 기초다. 그러나 이 기초는 조국교회 안에서 무너진지 이미 오래되었다. 단지 연륜이 짧은 목사와 연륜이 긴 목사가 있을 뿐이며, 피차간에 섬김과 배움을 통해서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일에 동역함이 있을 뿐이다. 장로님들의 사고방식에도 문제가 있는데, 결국 이것은 목사가 잘못 가르친 탓이다.
목사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지 않으면 손해는 교인들이 보게되어 있다. 그리고 2차적으로 목사 자신에게 손해다. 왜일까? 목자가 양들에게 양질의 꼴을 먹이지 않으면 양들은 영양실조나 굶주림에 처하게 된다. 그러면 목자는 양 주인으로부터 해고될 것이다. 목사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지 않으면 결국 성도들은 기아에 빠지고,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목사는 끝장난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엄숙하고도 엄중하며 분명하고도 확고한 원리다.
하나님의 진리를 묵상하는 일에는 충분한 시간과 기도가 따라야만 한다. 그래서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행 6장). 그런 과정에 기도하고 설교를 준비하면서 말씀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진리의 보화들을 방울방울 떨어뜨려 주신다. 목사는 그것을 받아내어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기본적인 원리를 알게 되었지만, 이것이 사람에게 어떻게 관련되는지에 대해서 조금 더 지평이 열리게 되었다.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신 것이다. 이 보화들을 가지고 성도들 앞에 설 때 성도들의 갈함은 반드시 채워질 것이다.
진실로 복음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대 전도 방법이 추구하는 인간친화적 도입 문구이다. 그러나 이것은 복음의 진수를 증거하기 위한 도입으로는 적실하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복음의 진수를 증거하기 위한 도입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죄에 대해 진노하고 있습니다."
이제 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내 자리를 다시 찾아가고 있다. 그것은 절도 있고 충성스러운 말씀연구와 기도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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