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이신칭의 야고보는 이행칭의를 말한 것이 아니다. 바울은 이신칭의의 결과로 선행을 강조했고 야고보는 이행증신에 따르는 칭의를 강조했다. 결국 믿음으로 칭의되고 행위의 열매를 낳는다는 동일한 성경의 명제를 바울은 순방향의 관점에서 야고보는 역방향의 관점에서 서술한 것이다. 동일한 명제를 가지고 바울은 행위구원을 경고했고, 야고보는 율법 폐기론을 경고한 것이다. 즉 관점의 차이이지 진리의 차이가 아니다. 이것은 교회사적으로 명백하게 해설되어 온 부분이다. 이행증신이라는 말은 아무도 쓰지 않고 있는데, 신학적으로 문제 없는 적절한 어휘라고 판단된다. 나는 이 말을 설교에서 종종 사용하였다.
바울 - 창 15:6 사용 - root/cause -칭의의 원인 (행위구원 경고)
야고보 - 창 22 사용 - fruit/effect - 칭의의 효력 (율법 폐기론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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