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모처에서 선교사로 사역하시는 신대원 동기생 한분과 나누었던 내용인데 참고로 올려둔다. 20190725
[선교사님] 초청과 기도까지 하는것도 맞고 초청과 기도, 결단까지 하는것도 괜찮아 보이는데요.. 수동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신안에 있는 믿음과 성령의 역사를 발견하게 되는 시간이지 않을까요? 물론 그게 인간의 결단으로 되는것처럼 의식해서도 안되고, 그런 뉘앙스로 몰아가서도 안되지 만요.
[이스데반] 그런 전도방법을 사용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말하자면 수동적인 사람을 도와주려고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실상은 여기에 깊은 문제가 있습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중생시키시면 믿게 되어지는 것이거든요, 다시 말해서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지요. 그런데 인간이 뭔가를 끌어내려고 도와주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은 잘못된 것이랍니다. 사실 성령의 역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거든요. 전도자들은 뭔가 눈에 보이는 것을 선호하죠. 영접기도도 따라하고, 피전도자가 눈물을 흘리거나 고백하거나 뭐 이런 것들을 자꾸 보려고 하죠. 여기에 인본주의가 들어가고, 장치화되어 버리면 은혜의 종교가 인위적 종교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고 은혜안으로 초청하고 은혜 주시기를 기도하고 마쳐야 합니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 성경적인 상담과 기도가 병행되어야 겠죠. 영접기도는 아닙니다. 저를 따라하십시오. 제 손을 붙드십시오. 이런 식으로 말이죠....
관련링크
https://catechism.tistory.com/1120
'신학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대원 교육에 필요한 세가지 (0) | 2022.11.11 |
---|---|
9개 키워드를 통해 보는 성경의 핵심 (0) | 2022.11.05 |
1905년 우트레흐트 판결문 요약 (0) | 2022.08.23 |
개혁파 신자의 고백 (0) | 2022.08.01 |
예수님의 축사, 치유의 의미 (0) | 2022.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