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방편 그 자체는 도덕적 작용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은혜의 방편은 그 자체로는 재창조의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방편 안에 주입된 것이 아니라 은혜의 방편에 수반하기 때문이다. 비록 하나님은 자신의 위대한 선하심 안에서 방편을 도입하고 방편을 통해 일하시지만, 하나님 자신은 그런 방편에 비의존적으로 남으신다. 하나님은 죄인의 마음 안으로 내려오신다. 그리고 거기에서 자신의 은혜와 성령으로 직접, 확고하게,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방식으로 일하신다.
헤르만 바빙크, 바빙크의 중생론, CLC,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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