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산책

행위구원

V.D.M. 이스데반 2025. 10. 25. 10:26

통탄할만한 일이 있다. 기독교학과 교수라는 분이 버젓이 행위구원론에 준하는 내용을 가르치고 있으니 말이다. 그는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호도한다. 믿음으로 구원받습니까? 예. 그 믿음은 살아있는 믿음입니까? 예. 살아있는 믿음은 선행이 있습니까? 예. 그러면 선행이 없으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죠? 이렇게 해서 마치 선행이 공로라도 되는 것처럼 사람들을 행위구원론으로 몰아넣고 있다. 왜 이 분은 성경의 원리를 이런 식으로 곡해하는가?

 

선행이 없으면 구원받지 못하는가? 이 분은 분명히 답해야 한다. 여기에서 선행이 구원의 공로를 말하는 것인가? 즉 나 자신의 선행 때문에 구원받는 것인가? 그러면 두말할 것 없이 행위구원론이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의 열매로서의 선행을 말하는 것인가? 이는 성경이 말하는 바이다. 성경은 구원받은 자는 선행의 열매를 내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선행에 열심을 기울이도록 격려한다. 

 

이 분은 성경의 이신칭의의 개념과 열매로서의 선행 개념에 대한 강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구원받았으니 끝이라는 개념 속에서 사람의 선행은 무시되기 때문에 구원의 미래성을 강조하고 행위에 따른 심판이 있으므로 우리의 구원은 마지막 날 결정된다는 식으로 이끌고 간다. 전형적인 NPP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구원받았으니 선행은 무시해도 된다는 가르침은 율법폐기론 이단이고 이는 보편교회에서 가르치는 바가 아니다. 이 분은 보편교회를 율법폐기론 이단으로 싸잡아 비판하고 있다. 물론 현대 교회가 십계명을 소홀히하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어느 정도 율법폐기론적인 성향이 있다고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율법 폐기론을 정죄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결코 구원받았으므로 행위는 무시해도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렇게 말해서도 안된다. 그렇게 가르침 받았다면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성경은 구원받았으므로 마땅히 선행을 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인간의 선행이 자신의 최종구원을 결정한다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행위 구원론 이단이다.

 

성령의 중생의 역사로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믿음으로 전가받아 의롭게 된 사람은 중도에 탈락하지 않으며, 선행의 열매를 내며, 마지막까지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고 하나님의 구원의 주권이다. 이것이 바로 은혜에서 시작하여 은혜로 마치는 구원의 역사다. 인간의 선행도 결국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분은 처음에 믿습니다고 고백한 후에는 사람 편의 행위가 최종 구원을 결정할 것이라고 사람들을 호도하고 있다. 그리하여 인간 편의 선행이 삶가운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구원받았으므로 이제 새로운 삶이 열매로써 마땅히 따르며, 이로써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이런 점에서 행위는 믿음을 증명한다. 즉 이행증신이다. 행위는 구원의 공로가 아니라 믿음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하는 지표다.

 

그러나 인간의 행위는 구원의 공로도 아니고 구원의 수단도 아니다. 다만 그 믿음이 참되다는 것을 가리키는 지표다. 구원의 공로는 오직 그리스도의 의 뿐이다. 인간의 행위가 하나님 편에서 의가 되어 공로가 될 수 없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받으실 행위는 완전하게 흠이 없는 완전한 순종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이 도달하여 스스로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대신 얻어주신 분이 그리스도시다.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만이 우리를 의롭게 하고 그 의를 우리에게 전가해 주는 유일한 수단이 바로 믿음이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으로라는 표현은 결국 오직 그리스도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씀과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행위는 그 열매로써 결코 간과되거나 무시되지 않는다. 성경은 이것을 강조하고 신자의 열매맺는 삶을 지속적으로 격려한다. 그러나 인간의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구원에 기여하거나 보탬이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즉 자신의 구원에 자신의 행위를 공로로서 조금이라도 걸어둔다면 그리스도의 완성된 십자가의 사역을 짓밟는 일이다.  인간의 행위는 그 어떠한 것도 순수하지 못하고 죄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바이며 바울이 말하는 바이다. 

 

왜 이 분은 성경을 호도하고 자신의 행위에 자신의 구원의 결정을 걸어두려는 알미니우스주의적 접근으로 사람들을 혼란과 불안에 빠트리는가? 왜 중생의 역사와 그 의미를 이 분은 무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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