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들은 택함 받은 자들과 유기된 자들을 구별할 수 없어서 믿게 될 자들이나 믿지 않게 될 자들이 누구인지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까닭에,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전하고, 택함 받은 자들의 구원을 오직 불분명하게 촉진시킬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랑의 동기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하나님은 사람들을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 부를 수도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은 자로서 진정으로 유기된 자인 경우 외에는, 목회자들은 그 누구의 구원에 대해서도 절대적으로 절망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든 죄인에 대해 자신의 의무를 부지런히 행하는 것이 마땅하다. 변화될 소망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데도 그의 의무를 소홀히 해서 어떤 사람이 영벌에 처해지게 되었다는 비난을 받을 만하다면,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짓는 것이다.
프란키스쿠스 투레티누스, 변증신학강요 1권, 부흥과개혁사, 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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