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산책

개혁 교회와 시편 찬송-이스데반

V.D.M. 이스데반 2019. 5. 1. 17:51

우리 나라에도 개혁 교회들이 생겨나고 있다. 기존의 장로교회가 물론 개혁 교회이기는 하지만, 종교 개혁자들과 이후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의 성경적 사상과 가르침에 보다 더 충실하게 접근해 가려는 시도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표현을 쓴다. 500년이 지나면서 종교개혁자들의 성경적 사상과 동떨어진 요소들이 이미 교회 안에 많이 들어와 있다. 

 

우리나라 장로교회는 유럽의 기독교적 전통보다는 20세기 영미권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았으므로, 종교개혁의 유산을 처음부터 잘 이어받았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시편 찬송이다. 개혁교회의 컨셉을 가지고 개척을 하거나 기존 교회를 개혁교회로 전환하려는 시도들 중에 예배의 개혁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 중에 한 부분이 시편 찬송이다. 

 

공예배의 찬송은 운율이 인간의 감정을 피상적으로 자극하지 않고, 가사가 성경적인 유형을 잘 드러내야 한다는 사상 속에서 발전된 것이 시편 찬송이다. 우리나라에도 21세기 이후로 칼빈의 제네바 시편 찬송과 스코틀랜드 시편 찬송이 찬송집으로 편집되어 출판되고 있다. 

 

제네바 시편 찬송은 현대인들이 부르기에는 운율이 너무 단조롭다는 느낌이 있다. 스코틀랜드 시편 찬송은 익숙한 곡조들이 더러 있어서 부를만 하다. 시편찬송을 불러야 개혁교회이고 안 부르면 개혁교회가 아닌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편찬송을 도입하는 교회는 이것이 개혁교회가 가진 소중한 유산이고 종교개혁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고 이후 신앙의 선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시편 찬송이 성경적 찬송이라고 믿는다. 말하자면 이미 교회사적으로 볼 때 잘 검증된 찬송이기 떄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예배시에 시편 찬송만 불러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현재 통일 찬송가 중에서도 좋은 찬송들이 있다. 걸러야 할 것들도 있지만 현재 통일 찬송가를 목회자가 잘 선별해서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예배 찬송을 위해서 좋은 찬송을 작곡하고 도입하는 일을 왜 멈추어야 하는가? 삼위일체 지향적인 아름다운 회중 찬송을 계속 작곡하고 배우고 부르는 일은 지금도 계속되어야 할 일이라 믿는다. 이것이 개 교회적으로 파급되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말이다. 

 

또한 일반적인 기도모임 등에서 복음송을 부르는 것은 안되는가? 된다고 본다. 찬송을 선별하고 적용하여 부르는 것은 공예배와 기도회등 모임 성격에 따라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된다. 

 

본인의 생각은 시편 찬송을 전혀 부르지 않는다고 개혁교회가 안되는 것도 아니고, 시편 찬송을 열심히 부른다는 한 가지 조건으로 개혁교회를 닮았다고 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다. 다만 개혁교회의 훌륭한 유산인 시편 찬송을 배우고 부르는 일은 현 시대에도 소중하고, 예배의 개혁이라는 측면에서도 권장할 만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것을 천편일률적으로 적용하기 보다는 교회가 처해진 상황에 맞게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현재 본인이 시무하는 교회는 스코틀랜드 시편찬송가를 활용한다. 이렇게 본인이 시편 찬송을 도입한 이유는 개혁교회의 소중한 성경적 유산이고, 예배 찬송으로도 훌륭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단지 개혁교회가 시편찬찬송을 부르는 경우가 많으니까 흉내내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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