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파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에게 있어서 빌리 그레이엄(1918-2018)은 사실상 적으로 간주된다. 지나친 표현일런지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소위 말하는 초청 결단이라는 의식(?)이 그의 주된 결점으로 알려져 있다. 찰스 핀니 계열의 아르미니우스주의식 인간의 의지에 의한 결단의 믿음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그의 방식을 좋아하지 않고 따르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성경적이지도 않은 방식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그의 설교에는 좀 더 귀를 기울여 보려고 한다. 그의 설교 자체는 복음적인 요소가 분명하고 호소력을 가진다.
설교는 어렵기도 하고 쉽기도 해야 한다. 분명히 회중의 성격에 따라 이것은 달라져야 한다. 빌리는 자신을 대중적인 전도자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그런 자신의 정체성과 그런 대상에 맞는 설교를 했고, 나는 그 부분을 기꺼이 인정할 것이다. 또한 오늘 양목사님과 대화하는 중에 나는 빌리 그레이엄 집회 가운데서 회심의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음을 인정한다고 하였는데, 양목사님은 그들 중 대부분은 처음 온 사람들이 아니라 기존에 교회를 다니던 사람들이 빌리 그레이엄의 집회에 참여하면서 회심을 경험한 경우일 것이라고 언급하셨다. 나는 이 부분에도 동의 했다.
그러나 나는 마지막 초청과 결단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회심은 초청과 결단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되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초청과 결단이라는 의식을 거치지 않았다 할지라도 회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초청과 결단이라는 의식은 선한 열매보다는 악한 열매만 산출할 뿐이다. 악한 열매는 참된 회심없이 결단한 사람들이다. 로이드 존스는 그래서 빌리 그레이엄의 집회를 돕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러나 나는 빌리 그레이엄의 선명한 복음 제시와 열정에 대해서 무시할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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