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신학이란 정신적인 것(νοητική)이 아니라 추론하는 것(διανοητική)이며, 이해하는(apprehensieve) 학문이 아니라 논증적 (discursieve, 論證的) 학문이라고 정당하게 주장하였다. 즉, 신학이란 단지 성경에 기록된 것을 말 그대로 혹은 문자적으로 반복하는 것만 아니라 그 재료를 작업하고 처리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많은 말들로”(Totidem verbis) 성경에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신학의 재료는 반드시 형식적으로(formaliter)가 아니라 내용적으로(materialiter), 명시적으로(explicite)가 아니라 암시적으로(implicite) 성경 속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성의 사용이 멸시를 받을 수 없다. 이성은 성경의 진리들을 선명하게 밝히고, 상호간에 비교하고, 그것들로부터 다른 것을 도출하기 위한 도구로서 환영받고 존중된다. 이성 없이는 신학의 학문과 그 진전에 대한 그 어떤 것도 언급될 수 없을 것이다.
“헤르만 바빙크의 캄펀 신학교 교수직 취임연설, 거룩한 신학의 학문” 중
박태현, 신학지남 85(1), 2018. 3, 277-33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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