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바빙크가 1908년 스톤 강좌 강연을 위해 미국 여행을 하면서 받은 생각들이다. 21세기 한국교회의 자화상을 보는 듯한 느낌도 일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츠빙글리의 기념설을 단순기념으로 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 요즘 츠빙글리 연구자들의 견해다.)
바빙크가 미국의 교회 생활에서 받은 전반적인 인상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서보다는 일반 기업에 훨씬 가깝게 행동한다는 것과, 설교가 내용 면에서 상당히 '빈약하다'는 것이었다. 주일학교 수업은 교리문답 교육을 거의 완전히 포기했다. 많은 교회에서 찬양 순서는 다양한 볼거리로 꾸며진 공연 같았고 이것이 예배로 통했다. 교리에 거의 전적으로 무관심한 태도는 미국 교회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었다. 부흥에 대한 관심은 크지만 개혁에 대한 관심은 극히 적었다. 부흥에 대한 설교는 지나치게 열광적이고 지나치게 열성적이고 과장된 어조로 선포되었다. 바빙크는 설교에서 죄와 악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 반면, 자신이 들었던 거의 대다수 설교에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주제가 지배적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바빙크는 장로교단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했다. 장로교단은 상당히 규모가 큰 편이어서 교단에 소속된 목회자 수는 약 1만명 정도였다. 벤저민 B. 워필드는 목회자와 신자의 수가 그처럼 대단히 많아서 심지어 다양한 교회 매체를 이용하더라도 현재 발생하고 있는 사건과 현상을 모두에게 알리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바빙크에게 알렸다. 뿐만 아니라, 장로교 사역자들이 받는 사례비는 유럽의 사역자들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성례의 측면에서는 세례가 크게 존중되지 않았는데, 많은 신자가 세례 받는 일을 지나치게 오랫동안 미루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세례를 받는 순간에도 세례가 언약 자녀를 위한 언약의 성례라기 보다는 일종의 '헌신' 예식이라는 인식이 더 지배적이었다.
성찬도 정말 칼빈주의적인 의미로 이해하기 보다 츠빙글리의 노선을 따라 '기념 식사'로 이해하는 경향이 더 강했다. 미국의 장로교회 사이에서는 권징이 시행되지 않았다. 장로회 석상에서 목회 지망생들을 심사하는 일도 거의 무의미했다. 목회 지망생들이 신학교에서 무엇을 공부했느냐는 중요한 문제로 생각되지 않았다. 훨씬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점은 실제로 장로회 석상에서 목회 지망생이 교리적으로 무엇을 아는지를 심사하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보다도 심사는 지망생이 화술이 뛰어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지의 여부와 같이 소위 더 '현실적인' 주제에 거의 완전히 치중했다. ...
론 글리슨, 헤르만 바빙크 평전, 부흥과개혁사, 454-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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