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이 프랑스 개혁자의 강렬한 정신은 로마 가톨릭에서처럼 창조를 보충하는 재창조가 아니며, 더욱이 재세례파들처럼 급진적인 새 창조도 아닙니다. 다만 모든 피조물을 새롭게 하시는 기쁨의 소식입니다. 여기서 복음은 온전하게 이해되며, 참된 보편성에 이르게 됩니다. 복음화 할 수 없는 것, 복음화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없습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집, 학교, 사회, 국가가 기독교 원리의 지배 아래에 놓입니다. 칼뱅은 철의 의지와 강렬한 엄격함으로 제내바에서 이러한 지배권을 확립하였습니다. 따라서 독일의 개혁은 종교와 성직자에 대한 개혁이었고, 스위스의 개혁은 국가와 사회까지 새롭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전자는 순전히 종교적인 것이었고 후자는 사회와 정치적인 차원까지도 포함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루터에게는 성경이 구원의 진리에 대한 원천이었던 것에 반해, 칼뱅에게는 삶의 모든 것에 대한 규범이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헤르만 바빙크, 교회의 분열에 맞서, 도서출판 100,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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