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설교자로 부름받았을 때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 있었다. 그것은 강단과 선교 현장에서 상실된 중생교리의 가르침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무명의 신학생시절에 쓴 원고를 부흥과개혁사는 받았고, 기획출판을 해 주었다. 그것도 두권씩이나 말이다. 보잘것 없는 작은 분량의 책이지만, 나는 그 책을 쓰면서 이 책은 이곳에서 출판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글 솜씨가 어떻든 부흥과개혁사가 그것을 받았주었다면 그 안에는 메시지가 있었음을 의미할 것이다. 또한 더하여 나는 사영리를 대체할 복음 전도지를 만들었고, 이 역시 같은 출판사에서 기획출간해 주었다. 옛 복음 전도지 <장원 양우 상론> 역시 같은 의미에서 김홍만 교수님과 동역하여 출간되었다. 나는 당시만 해도 획기적인 반전을 꿈꾸고 있었다. 영접기도 통과후 구원받았다고 선언하는 전도법은 중생과는 무관한 것이었고, 이 괴물이 한국교회, 아니 세계교회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은 암담한 것이었다. 나는 이것을 샌디맨주의와 궤를 같이하는 현대의 양상으로 보고 신샌디맨주의라고 이름붙였다. 고매한 신학교수들과 명망있는 목회자들중 일부의 사람들까지도 이 엉터리를 칭송하거나 반대하지 않는 상황은 현실을 더 어둡게 한다.
하나님의 섭리 아래, 대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꿈은 아직 중단되지 않았다. 반드시 대 반전은 올 것이다. 오늘날 개혁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보다 본질적인 구원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여기고 여기에 대한 결집된 힘을 모아서 복음주의 전체를 리더해 나가는 개혁교회가 되어야 합당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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