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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과 설교-이스데반

10여년 전 중생교리에 관한 2부작으로 와 를 부흥과개혁사에서 출간해 주었다. 나는 의도적으로 두권 다 동일하게 마지막 부분을 설교에 관한 장으로 마무리했다. 전자에서는 설교가 추구해야할 방향성을 다루었고 후자에서는 스펄전을 모델로 하여 중생교리를 설교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소개했다. 이후 을 번역하여 출간하면서 마음에 와닿은 것은 바빙크는 이 책의 마무리를 설교와 관련지었다는 점이다. 바빙크는 중생 교리를 다루면서 회심적 설교와 회중적 설교의 밸런스에 초점을 두었다. 바빙크는 구별적 적용이라는 개혁파 설교의 장점을 구체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결국 거듭나지 않은 사람과 중생한 사람 사이에서 설교가 이 둘에 대한 균형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런 점들을 생각해 보면서 오늘날 중생 교리가 설교..

신학산책 2023.10.26

창세기의 타락 기사는 신화인가?-스프로울

어떤 이들은 창세기의 타락 기사를 신화로 생각하지만 아무도 슬픔, 스트레스 그리고 고생이 신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저주 아래 사는 삶은 현실이다. 그것은 죄와 분리할 수 없이 관련되어 있다. 당신과 내가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고통을 생각해 보라. -질병,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깨어진 관계, 험담이나 도둑질의 희생자가 되는 것으로부터의 고통. 당신이 이제까지 알고 있는 어떤 고통이 죄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것이 있는가? 이 세상은 죄악 되기 때문에 저주받은 것이다. 죄책은 객관적이다. 진노는 객관적이다. 그리고 저주는 객관적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것들이 현실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R. C. 스프로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 1, 부흥과개혁사, 281-282.

인용문 2023.10.16

원죄에 대하여-이스데반

책을 읽다보면 조직신학이나 역사신학을 전공한 사람조차도 원죄를 아담의 첫죄로 서술하는 경우가 있다. 위키백과에도 2023년 10월 현재 그렇게 잘못 기술되어 있다. 일반적인 대화 중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으나 신학적인 의미에서는 원죄가 그렇게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원죄(Original Sin)는 기본적으로 아담의 첫 범죄로 말미암아 인류에게 전달된 부패한 본성을 말한다. (여기에 전가된 죄책과 원의의 상실을 포함시킬수도 있다). 그러나 아담의 첫죄=원죄라고 설명하는 것은 신학적인 의미에서는 옳지 않다. 관련링크 https://catechism.tistory.com/538 원죄의 정의-투레티누스 원죄는 어떤 때는 넓은 의미로 전가된 죄와 타고난 죄라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이 둘 모두를 포괄적으로 지..

신학산책 2023.10.16

피터 마터 버미글리: 신학적 평전-김진흥

칼빈과 동시대의 인물로서 어떤 점에서 칼빈보다 더 탁월한 학자적 자질과 실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분이 버미글리다. 버미글리 전공자 김진흥 박사의 저술로서 버미글리의 생애, 예정론과 성찬론에 있어서 핵심적인 부분들을 소개하는 점에서 상당한 읽을거리가 있다. 이 분의 친형 김진영 목사님도 버미글리 전공자다. 버미글리를 알고 배우고자 하는 분에게 필수적 자료라 할 수 있다.

성찬에서 제정말씀의 역할

바로 이 제정말씀의 선포를 통하여 떡과 포도주가 성례전적 의미를 가진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하는 성례전적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나 버미글리는 제정말씀을 소리내어 말하는 것이 그 자체로 성례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졌다는 로마 가톨릭적인 생각을 신중하게 배척한다. 제정말씀의 선포는 분명히 필수적 원인이지만, 그것 자체가 성례의 효과적 원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찬식을 성례가 되게 하는 효과적 원인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성령 하나님께서 제정말씀의 선포를 통하여 성례전적 변화를 일으키셔서 성찬의 예전을 은혜의 수단인 성례로 만드신다. 그러므로 성찬의 집례자가 시행하는 제정말씀의 선포는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일종의 도구라고 할 수 있다. 김진흥, 피터 마터 버미글리: 신학적 평전, 개혁주의학술원, 273.

인용문 2023.10.07

성찬에서 믿음의 역할

믿음은 성찬의 성례에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시도록 하는 '원인'이 아니다. 다만, 신자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현존 앞으로 나아가서 그로부터 유익을 얻게 해주는 수단일 뿐이다. 성찬의 성례에서 믿음의 특별한 역할은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몸과 성찬대 위의 두 요소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를 극복하게 해 주는 것이다. 신자들의 편에서 볼 때, 성찬의 성례에서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란 다름 아니라 믿음으로 도달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성찬의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말한다. 김진흥, 피터 마터 버미글리: 신학적 평전, 개혁주의학술원, 276.

인용문 2023.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