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앙/바빙크 컬렉션 57

창세기 3장의 뱀은 실제의 뱀인가?

여자가 뱀의 꾀임에 속아서 범죄를 저질렀다(고후 11:3; 딤전 2:14). 여기서 뱀을 하나의 상징적인 현현으로 보아서는 안 되고, 실제의 뱀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뱀이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고 지혜로웠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창 3:1; 마 10:16). 그러나, 계속해서 전개되는 계시로 볼 때에, 마귀적인 능력이 뱀을 이용하여 사람을 속이고 그를 곁길로 빠지게 만들었다는 것도 이에 못지 않게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구약의 몇 군데에서 이미 사탄이 사람을 대적하는 자요 미혹하는 자라는 것을 읽을 수 있다(욥 1장; 대상 21:1; 슥 3장). 헤르만 바빙크, 개혁교의학 개요, 크리스천 다이제스트, 268.

불신자의 기도

불신자는 올바르고 진실하게 기도할 수 없을지라도, 기도의 의무는 모든 선행과 함께 불신자에게도 요구된다. 또한 하나님의 법은 불신자에게 기도해야 할 의무를 부과할 뿐 아니라, 올바르게 제대로, 즉 영과 진리로 기도할 것을 명령한다. 불신자가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오직 그의 책임이다. 따라서 불신자는 죄악 된 기도만 할 수 있을 뿐이고. 기도하는 것이 죄를 짓는 것이므로, 차라리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게다가 불신자에게는 영적인 지각은 없을지라도, 자신이 하나님에게 의존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함과 선하심을 이성과 본성에 의거해 안다. "새롭게 되지 않는 사람이 아예 기도하지 않는 것 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본성적으로 지각하고, 하나님의 위엄과 선함을..

신비주의와 관상

신비주의자는 자신을 하나님 안에 흡수시켜, 자기 자신인 '나'를 희생시키고 하나님에 대한 관상에 매몰되어 자의식을 상실한다. 그래서 신비주의자는 이내 인격적인 하나님이라는 개념을 상실하고, 범신론자가 된다. 그는 정적주의자가 되어 평안과 고요를 원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의 교제 속에서 살아가지만, 여기에서 이 교제는 언제나 말씀에 의거한 믿음의 문제다. 관상은 오직 내세에서만 누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내세에서 이 교제는 이제 더 이상 말씀에 의거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이렇게 정한 것을 무시하고, 현세에서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를 추구하여 하나님을 맛보고 경험하며 관상하려 한다. 하지만 그렇게 했을 때는 혼이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의..

옛 사람이 죽는 것과 새 사람이 사는 것

옛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시켰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뉘우침이요, 그로 인하여 점점 더 그런 죄를 미워하고 거기서 피하는 것이다.그리고 새 사람이 다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이요, 또한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선한 행실로써 사는 일에 대한 욕망과 사랑을 갖는 것이다. 헤르만 바빙크, 개혁교의학 개요, 크리스천 다이제스트, 544.

권징

교리의 통일성과 교회의 통일성을 어지럽히는 자들에게 권징을 시행함은 마땅하며, 오히려 엄숙한 의무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그들로부터 떠나야만 하고, 그들이 떠나가도록 내버려 두어 스스로 숙고하고 회심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이해할 때 권징은 교회의 보편성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권징은 결코 '넘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우는 것'입니다. 따라서 결코 누군가를 축출하기 위한 것으로 써먹어서는 안 됩니다. 권징은 그 모든 절차 가운데 교회가 간절히 기도하면서 시행하는 것이며, 목이 곧고 강퍅한 죄인을 예수의 돌봄 아래 되돌리기 위해 주께서 교회에 수여한 마지막 수단입니다. 권징 가운데 교회의 거룩함이 드러나며, 마찬가지로 교회의 보편성도 드러납니다. 헤르만 바빙크, 교회를 위한..

교의학과 윤리학의 차이

교의학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및 우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다룬다. 교의학에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이다. 교의학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말씀으로서 우리의 외부로부터 및 우리 위에서 오고, 우리는 수동적이고 경청하며 우리 자신을 열어 하나님의 지시를 받는다. 윤리학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자신의 일을 행할 때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다룬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행하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 안에서 행하는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능동적이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감사하여 시편을 노래하고 찬송한다. 교의학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로 내려오는 반면에, 윤리학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에게로 올라간다. 교의학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의 것인 반면에, 윤리학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다. ..

바빙크 설교문 일부

믿음으로 신자는 제일 먼저 세상 폭력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더 나아가 신자는 믿음을 통해 선지자적, 제사장적, 그리고 왕적 권세로 이 세상을 다스립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믿음은 녹슬고 빛바랜 안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홀로 고요한 곳으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활기차고 힘차게 그리고 용감무쌍하게 세상 가운데로 침투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단지 즐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과 사역도 행합니다. 믿음은 무언가를 말하고 무언가를 행합니다. 믿음은 증거하고 구원합니다. 믿음은 말하고 행동합니다. 믿음은 말씀의 권세로 공격하고,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등장합니다. 믿는 자는 침묵할 수 없습니다. 신자들은 세상 한가운데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합니다. 신자들은 그 어떤 자신의 지혜를..

교회에 대한 신학의 의무

신학은 교회에 적대적이지 않고, 교회를 가장 거룩한 믿음으로 인도하고 그 믿음 위에 건설한다. 어쨌든 신학을 생명 가운데 불러내고 삶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교회다. 그래서 신학은 이런 식으로 교회의 완전을 위해 일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신학이 교회에 대해 성취해야 할 소명은 다양하다. 신학은 교회로 하여금 성경의 의미와 관점을 깨닫게 해야 하며, 말씀의 진리에서 좌우로 벗어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신학은 교회로 하여금 교회 역사를 알게 하고, 획득된 영적 보화들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신학은 과거로부터 교회를 부요하게 하고, 오늘날 역사 속에서 교회 자신을 이해하게 해야 한다. 신학은 사상의 세계에서도 교회의 신앙이 최고의 참된 학문으로 빛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신학은 교회를 인도하고 교회의..

신학에 있어서 이성의 사용

그러므로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신학이란 정신적인 것(νοητική)이 아니라 추론하는 것(διανοητική)이며, 이해하는(apprehensieve) 학문이 아니라 논증적 (discursieve, 論證的) 학문이라고 정당하게 주장하였다. 즉, 신학이란 단지 성경에 기록된 것을 말 그대로 혹은 문자적으로 반복하는 것만 아니라 그 재료를 작업하고 처리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많은 말들로”(Totidem verbis) 성경에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신학의 재료는 반드시 형식적으로(formaliter)가 아니라 내용적으로(materialiter), 명시적으로(explicite)가 아니라 암시적으로(implicite) 성경 속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성의 사용이 멸시를 받을 수 없다. 이성은 성경의 진..

아리우스주의와 사벨리우스주의에 대한 평가

아리우스주의는 성자와 성령을 신적 존재의 바깥에 두고 이들을 피조물의 수준으로 낮춤으로써 하나님의 하나이심을 유지하고자 했던 반면에, 사벨리우스주의는 삼위에게서 독립성을 제거함으로써 동일한 결과에 이르고자 했고, 삼위를 동일한 신적 존재의 연차적인 계시의 양태로 변형시킴으로써 그 일을 이룬 것이다. 아리우스에게서는 유대교적이고 이신론적이며 합리주의적인 사고방식이 특징적으로 표현되며, 사벨리우스에게서는 이교도적인 범신론과 신비주의의 사고가 표현되고 있다. 헤르만 바빙크, 개혁교의학 개요, 크리스천 다이제스트, 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