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앙 641

성령에 대한 모욕죄-판 헨더렌, 펠레마

성령에 대한 모욕죄는 마귀의 편에 서는 것이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마귀가 하는 일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 죄를 범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마귀의 사역이라고 해석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구속의 메시지에 대해 사람이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악한 일이다. ...결국 이 죄는 그리스도안에서 계시된 구속의 빛을 사탄이 이 세상에 가져온 어둠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 죄를 범하는 이들은 자기 자신을 어둠에 넘겨주고 빛을 소멸하려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가장 극단적으로 반대하는 것으로서 가장 사악한 죄다. 왜냐하면 이 죄는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를 스스로 결정했던 아담의 죄를 단순히 반복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빛을 어둠이라고 제시하는 것이기 떄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 사..

개혁신앙 2025.04.09

나사렛은 어떤 곳이었나-피터 워커

나사렛은 50가구 정도에 인구가 100~200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었다. 근처에 있는 세포리스나 갈릴리 호수 주변의 더 큰 마을에 비하면 중요하지 않은 동네였다. 호수 주변에 있는 이들 유대인 마을의 관점에서도 나사렛은 예수의 동시대인들 다수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곳이었다. 피터 워커,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서, CUP, 72.

개혁신앙 2025.03.24

은혜의 교리는 죄짓게 하지 않는다

사실 복음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빼버린다면, 복음에서 그 생명력인 피를 뽑아내는 것과 같아서, 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믿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 주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됩니다. 은혜는 복음의 영혼입니다. 은혜가 없는 복음은 죽은 복음입니다. 은혜는 복음의 음악입니다. 은혜가 없는 복음은 아무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중생한 자녀들에게 아버지의 넘치는 은혜는, 은혜의 단절은 절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의로 묶여진 띠입니다. 중생한 자녀들은 거룩한 감사를 드려야 하는 의무를 달콤한 것으로 느끼며, 주님을 경외함으로 온전한 거룩함을 갈망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본성을 따라 살아갑니다. 하지만 중생한 사람은 새로워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거룩한 본능들을 발휘합니다. 중생한 ..

은혜 언약의 전개 방식

은혜는 자연과 다르고 더 높은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는 자연과 연결되어,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도리어 회복합니다. 은혜 언약은 자연적 출생을 통해 물려주는 상속물이 아니라, 인류의 자연적인 관계 속 깊숙한 바닥에 흐로는 시냇물입니다. 은혜 언약은 한 가지에서 다른 가지로 뛰어넘지 않고, 역사적이고 유기적인 방식으로 가족과 후손 그리고 민족들을 통해 전개됩니다. 헤르만 바빙크, 기독교 신앙 안내서, 244-245.

은혜 언약의 공동체성

역사 속에서 은혜 언약은 단 한 번도 분리된 독립적 개인과 맺어진 적이 없었으며, 항상 한 사람과 그의 가족, 아담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이스라엘과 교회와 그들의 자손과 함께 맺어졌습니다. 이 약속은 신자 한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의 집에도 적용됩니다. 헤르만 바빙크, 기독교 신앙 안내서, 다함, 244

그리스도인과 정치적 상황에 대한 대처-반드루넨

...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사랑이 가득하고 불쌍히 여기며 즐거워하는 것이어야 한다. 방금 말했듯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의뢰하고 신뢰한다면,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 수밖에 없다. 믿음은 사랑을 통해 역사하기 때문이다(갈 5:6). 자신의 주님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에게서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흘러 넘쳐야 한다(예. 골 3:12; 참고, 마 9>36 등). 그리스도인은 흔히 자신과 다른 정치적 견해를 지는 사람을 성급하게 자신의 원수로 여긴다. 어떤 경우에는 그런 사람이 진정으로 자신의 원수일 수도 있겠지만, 원수 사랑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주된 속성이다(마 5:43-48). 그리스도인이 정치적인 일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하는 것은 정말 합당하지 않다. 세상이 부러워하는 수준의 번영과 자유와 평화..

개혁신앙 2025.02.28

단독구원설과 협력설-비키

단독구원설 또는 아우구스티누스주의자와 개혁파의 구원 교리는 유효한 부르심은 복음에 대한 인간의 불신앙와 저항을 이기므로, 하나님의 은혜만이 구원하는 믿음 및 그리스도와의 생명의 연합을 만들어 낸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협력설과 구별된다. 협력설에 따르면, 유효한 부르심이 인간을 믿음과 구원으로 이끌려면, 인간은 그 은혜를 거역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과 협력해야 한다. 둘 간의 차이점은 은혜가 지닌 실제적인 능력에 있다. 조엘 비케, 폴 스몰리, 개혁파 조직신학 5, 부흥과 개혁사, 455.

개혁신앙 2025.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