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문 577

성도와 윤리적 삶-류성민

하나님의 복음은 성도를 윤리적으로 악하게 만들지도, 선을 행하는 것에 수동적으로 만들지도 않고, 연약함으로 저지르는 죄에 대해 핑계하게 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법이 가르치는 의를 찾고, 능동적으로 선을 행하며, 적극적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나아간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법을 따라 윤리적으로 선한 삶을 살아간다. 다만 그런 삶의 순종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 보탬이 되거나 공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안다. 하나님의 법을 따른 윤리적 삶은 하나님의 백성의 자연스러운 행동이요, 징표이다. 그리고 법을 따라 사는 것이 성도의 가장 행복한 삶이다. 류성민, 그리스도의 순종과 그리스도인의 순종, 신학정론, 2023/12, 488-489.

인용문 2024.02.07

직접적 중생에 대한 우트레흐트 총회(1905)의 판결

이 용어는 분별력을 가지고 사용될 수 있다. 루터파와 로마가톨락교회에 반대해 개혁교회가 중생은 말씀이나 성례 같은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전능하시고 중생시키시는 사역을 통해 일어난다고 항상 고백해 온점에 있어서 그러하다. 그러나 성령의 중생시키시는 사역은 마치 설교와 중생 사역이 서로 분리된 것처럼 말씀의 설교로부터 단절되는 식으로 이해하며 안 된다. 왜냐하면 비록 신앙고백서(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유아기에 죽는 우리 자녀들의 구원과 관련해 그들이 복음의 설교를 듣지 못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구원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며, 우리의 신앙고백 표준서들(세 일치 규범)이 어디에서도 우리 자녀들 및 다른 자녀들에게 중생이 일어나는 방식을 그 자체로 표현하지 않지만, 복음이 믿는 자 누구에게나..

인용문 2024.01.10

구원의 여부를 사람의 선택에 걸어둔 아르미니우스

그리스도에게 오는 것이 가능할 수 있으려면 그 전에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셔야 한다는 것에 아르미니우스는 동의했다. 좁혀 생각해보면, 심지어 아르미니우스도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를 선택할 수 있으려면 그 전에 성령이 그 사람 안에 역사하셔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성령이 어떤 일을 하시는가에 대해서는, 아르미니우스의 이해는 아우구스티누스 전통이 갖는 이해와 완전히 다르다. 아르미니우스의 견해에 따르면, 하나님이 그리스도에게 나올 수 있는 은혜를 주실 때조차도 여전히 당신은 그 은혜를 거절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에게로 나오는 것을 도와주는 은혜를 받아들이고 또 어떤 이들은 그 도움을 거절한다. 제공된 은혜에 협력하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고 그 제안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멸망한다. 따라서 ..

인용문 2024.01.08

구약 제사의 성례적 성격-칼빈

이 야만적인 짐승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드러나는 은혜의 증거물이었다는 점을 빼면 자체로는 속죄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옛날 사람들은 우리가 지금 세례를 통해 깨끗해지는 것과 같이 희생제물을 통해 성례적인 방식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상징들은 죄인이 그리스도 안에 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용서를 구하는 법을 배우도록 믿음과 회개로 시행되었들 때에만 유용했다는 결론이 따라 나온다. Edmondson, Calvin's Christoloty, 62. 가이 워터스 외 엮음, 언약 신학, 부흥과개혁사, 490. 에 인용됨. 칼빈의 출 29:38-41 주석 참고.

인용문 2024.01.08

은혜 언약의 시행의 차이-칼빈

첫째, 옛 언약은 물리적 복을 사용해 그들의 미래의 하늘의 기업에 대해 미성년자인 이스라엘을 가르쳤다. 새 언약 백성은 지금 미래의 생명을 직접 묵상하는 위치에 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여호와는 마치 어린아인 것처럼 [구약] 교회를 가르치셨다. 지금은 마치 어른인 것처럼 [신약] 교회를 가르치신다. 구약의 물리적 처벌은 지금 계시된 영원한 영적 사망의 표지였다. 가이 워터스 외 엮음, 언약 신학, 부흥과개혁사, 490. 칼빈의 기독교강요 2.11.1-3 참조. *관련링크 https://catechism.tistory.com/1471 은혜 언약의 이전 시행들을 성취하신 예수-크루거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복을 베풀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창 12, 15장)은 아브라함의 그 "자손"(즉 예수)과 예수 안에 있..

인용문 2024.01.08

친구가 지옥에 있는 것을 알고나서 나는 천국에서 행복할까?-스프로울

나는 거스트너 박사와 대화하면서 다음과 같이 고뇌한 것이 생각난다. "만약 제가 이 세상에서 제 친구였던 어떤 이가 지옥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제가 천국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그는 나에게 말했다. "자네가 천국에 이르게 되었을 때, 자네는 지옥 안을 내려다보고 자네 친구가 거기 있다는 것을 보았을 때, 자네 친구가 거기 있다는 것을 기뻐할 수 있을 만큼 거룩하게 될 것일세." 거스트너 박사는 우리가 죄인이고 이 세상에서의 우리 애정은 우리와 동일한 사람들을 지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천국을 적대시하는 사람들의 엄청나게 많은 반역에 동조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보다 우리와 동일한 피조물의 복지에 더 많은 과심을 갖는다. 그러나 천국에서 우리는 거룩하게 될 것이고 우리의..

인용문 2023.12.26

위대한 설교의 특징-웰스

하나님은 설교자의 생각이 성경 텍스트에 그리고 그 마음이 하나님의 존전에 있을 때, 그 설교자의 더듬거리는 입술을 통해 말씀하신다. 루터의 말대로, 하나님은 설교자의 입 안에 살아 계신다. 이런 설교야말로 우리를 호출하고, 우리의 영혼을 살지게 하고, 우리를 하나님의 존전에 데려가서, 하나님의 성품이나 하나님의 진리나 하나님의 사역을 보고 경외심과 감사와 때로는 책망을 안고 떠나가게 한다. 우리는 바로 그 하나니의 존전에 있었던 것이다! 위대한 설교는 항상 이런 경험을 낳는 법이다. 데이비드 웰스, 용기있는 기독교, 부흥과개혁사, 333.

인용문 2023.12.01

교회에 대해 재고할 것-웰스

교회는 우리가 만든 창조물이 아니다. 우리가 운영하는 사업체도 아니다. 우리가 그것을 관리하도록 부름 받은 것도 아니다. 우리의 경력을 향상시키려고 거기에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자신의 성공울 위해 거기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사업이 아니다. 교회는 사실상 처음부터 우리의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재고할 필요가 있는 것은 교회가 아니다. 오히려 교회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재고되어야 한다. 재검토가 필요한 것은 교회의 신실성이다. 교회가 과연 그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께 신실한가, 이 세상에서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관심사여야 한다. 교회는 우리의 관리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보살핌 아래에 있다. 그리고 그분이 건강한 상태로 진단하는 ..

인용문 2023.11.30

교회가 전할 진리-웰스

이 세상은 모든 즐거움과 권력과 안락함과 함께 사라져 가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의 장막이 그 위에 드리워져 있다. 새로운 질서가 그리스도 안에서 생겼다. 오직 이 질서 안에서만 의미와 소망과 하나님의 용납이 발견될 수 있다. 사도적 기독교가 전하는 것은 사적인 영성이 아니라 진리였다. 신성에 접근하는 길을 제공한 것은 자아가 아니라 그리스도였다. 초대 기독교가 권한 것은 편안한 컨트리 클럽이 아니라 그리스도였고, 그리스도는 고통이 따르는 순종을 요구하셨다. 기독교의 주관심사는 이 세상이 거꾸로 뒤집힐 때 하나님이 시공간에서 행하신 일이었지, 프로그램과 섬광 전구와 멋진 드라마를 배가시키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영상을 원하고 오락을 좋아할지 모르지만, 교회가 전할 진리는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살아나신 그..

인용문 2023.11.29

비가시적 교회와 가시적 교회-맥그래스

비가시적인 면에서 볼 때 교회는 선택받은 이들로 이루어진, 하나님만이 아시는 보이지 않는 모임이며, 가시적인 면에서볼 때 교회는 이 세상에 속한 신자들의 공동체다. 전자는 선택받은 사람들로만 이루어지며 후자는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 선택받은 이들과 버림받은 이들로 이루어진다. 전자는 신앙과 희망의 대상이며 후자는 현재 경험하는 대상이다. 이 둘의 차이점은 종말론적인 성격을 띈다. 즉 보이지 않는 교회는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최후의 심판으로 인간을 다스릴 때 이루어질 교회다. 칼뱅은 가시적 교회가 비록 약점이 있다고 해도 모든 신자가 존중하고 헌신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이유가 그리스도의 참된 몸인 비가시적 교회 때문이라고 밝힌다. 이러한 구분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오직 하나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

인용문 2023.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