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문 577

하나님의 형상과 살인 금지-웰스

살인에 대한 금지는 우리의 창조된 존재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지, 환경에 따른 존재의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다른 인종을 싫어한다고 그들을 죽이면 안 되는 이유는 그들도 하나님의 형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노인들이 사회에서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그들을 죽여서도 안 된다. 중요한 점은 그들의 유용성이 아니라 그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이를 연장시키면, 태어나지 않은 존재들도 그들이 자기방어를 할 수 없고 우리에게 불편하다고 해서 그들을 죽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형상은 모든 사람의 공통분모와 같다. 데이비드 웰스, 용기 있는 기독교, 부흥과개혁사, 227.

인용문 2023.11.14

구약 성도들의 구원- 스프로울

구약 성도들은 나중에 성취될 약속에 대한 믿음에 의해 의롭다함을 받았다. 따라서 그들의 믿음은 그들의 구속자의 아직 성취되지 않은 사역에 대해 내다보는 것이었다. 신약 성도들은 구약의 약속들을 믿고 신뢰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안에서 그 약속들이 실현되고 성취된 것을 믿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에서 약속에 대한 믿음은 오실 구원자의 유익에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수단이었다. 우리가 이미 성취된 예수님의 사역에 의해서 구원을 받은 것과 꼭 마찬가지로 구약의 성도들은 아직 성취되지 않은 예수님의 사역에 의해서 구원을 받았다. R. C. 스프로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 1, 부흥과개혁사, 314.

인용문 2023.11.13

김나지움-바빙크

그리스에서 이 단어는 체육을 하는 건물의 이름이었다. 이후에 이 단어는 라틴어에서 수사학을 가르치는 학교의 이름으로 쓰였다. 중세에 이 단어는 교육을 위한 학문 기관으로 일반적으로 지정되었다. 16세기 이후 이 단어는 점차 완전한 인문주의 교과과정을 가르치는 학교에 대한 이름이 되었다. 여기서 세 개의 고대 언어를 교육하거나 최소한 두 개의 고전 언어를 가르쳤다. 헤르만 바빙크, 현대 사상 해석, 다함, 362.

인용문 2023.11.07

바울의 언약 견해

우리는 바울의 언약 견해를 통해 바울의 가르침과 사역의 핵심에 계신 분 곧 예수 그리스도를 더 명확히 보게 된다. 우리는 언약을 통해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긍휼이 어떻게 성경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언약을 통해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긍휼이 어떻게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계 속에 있는지 보게 된다. 따라서 바울은 언약이 자신의 가르침이나 자신의 가르침의 중심이 자신의 복음에 결코 보조 수단이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신구약 성경의 다른 저자들과 같이 바울도 성경의 언약들을 하나님이 의도된 목표 곧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역사를 진행시키는 수단으로 이해한다. 가이 워터스 외 편, 언약신학, 부흥과개혁사, 344.

인용문 2023.11.06

모세 언약과 새 언약의 실체

모세 언약과 새 언약의 실체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다. 모세 언약은 그리스도를 장기적으로 모형과 그림자를 통해 제시한다. 새 언약은 그리스도를 역사 속에서 완료된 그분의 사역에 비추어 제시한다. 따라서 이 두 언약은 보완 관계, 아니 사실은 유기적 관계 속에 있다. 비록 이 두언약이 그리스도를 다른 관점에 따라 제시하기는 해도, 공통 관심사는 그리스도와 죄인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다. 가이 워터스 외 편, 언약신학, 부흥과개혁사, 340.

인용문 2023.11.06

모세 언약의 목적

그러므로 바울은 모세 언약을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과 맺으신 하나의 은혜 언약의 시행으로 이해했다. 모세 언약의 목적은 두 가지다. 첫째, 모세 언약은 죄를 명확히 정의하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들이 죄로 말미암아 참으로 무력하다는 것과 구주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다. 둘째, 모세 언약은 이스라엘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준비시키고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끄는 초등교사로서의 역할을 했다. 모세 언약은 하나님의 백성의 삶에 영구적인 정착물이 되도록 의도된 것이 결코 아니었다. 모세 언약은 아브라함 언약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그리스도가 오셔서 죽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을 때 끝났다. ...율법이 죄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불순종에 대해 저주를 선언하는 것이 전부..

인용문 2023.11.06

과정신학-웰스

과정신학은 하나님이 인생의 전개를 보시면서 인생을 재평가하시고, 자기 백성과 더 깊은 관계를 갖기 위해 자신의 위치를 바꾸시는 등 그분의 행동에 대해 끊임없이 재고하신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양방 통행로이며, 하나님의 뜻 자체는 창조물과의 협력 속에서 점진적으로 변화하는데,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자기 창조물에 대해 최종 결정권을 가지면서도 그렇게 하시지 않는 하나님, 미래의 모든 것을 보실 수 있으면서도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지 않는 하나님, 자신의 존재와 완전히 불변하도록 하실 수 있으면서도 창조물과의 관계에 맞춰 변하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이 존재한다. 데이비드 웰스, 위대하신 그리스도, 부흥과개혁사, 346-347.

인용문 2023.10.29

창세기의 타락 기사는 신화인가?-스프로울

어떤 이들은 창세기의 타락 기사를 신화로 생각하지만 아무도 슬픔, 스트레스 그리고 고생이 신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저주 아래 사는 삶은 현실이다. 그것은 죄와 분리할 수 없이 관련되어 있다. 당신과 내가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고통을 생각해 보라. -질병,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깨어진 관계, 험담이나 도둑질의 희생자가 되는 것으로부터의 고통. 당신이 이제까지 알고 있는 어떤 고통이 죄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것이 있는가? 이 세상은 죄악 되기 때문에 저주받은 것이다. 죄책은 객관적이다. 진노는 객관적이다. 그리고 저주는 객관적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것들이 현실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R. C. 스프로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 1, 부흥과개혁사, 281-282.

인용문 2023.10.16

성찬에서 제정말씀의 역할

바로 이 제정말씀의 선포를 통하여 떡과 포도주가 성례전적 의미를 가진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하는 성례전적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나 버미글리는 제정말씀을 소리내어 말하는 것이 그 자체로 성례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졌다는 로마 가톨릭적인 생각을 신중하게 배척한다. 제정말씀의 선포는 분명히 필수적 원인이지만, 그것 자체가 성례의 효과적 원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찬식을 성례가 되게 하는 효과적 원인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성령 하나님께서 제정말씀의 선포를 통하여 성례전적 변화를 일으키셔서 성찬의 예전을 은혜의 수단인 성례로 만드신다. 그러므로 성찬의 집례자가 시행하는 제정말씀의 선포는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일종의 도구라고 할 수 있다. 김진흥, 피터 마터 버미글리: 신학적 평전, 개혁주의학술원, 273.

인용문 2023.10.07

성찬에서 믿음의 역할

믿음은 성찬의 성례에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시도록 하는 '원인'이 아니다. 다만, 신자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현존 앞으로 나아가서 그로부터 유익을 얻게 해주는 수단일 뿐이다. 성찬의 성례에서 믿음의 특별한 역할은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몸과 성찬대 위의 두 요소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를 극복하게 해 주는 것이다. 신자들의 편에서 볼 때, 성찬의 성례에서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란 다름 아니라 믿음으로 도달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성찬의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말한다. 김진흥, 피터 마터 버미글리: 신학적 평전, 개혁주의학술원, 276.

인용문 2023.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