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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바빙크 평전-론 글리슨(역사신학-전기)

개혁교의학을 읽은 사람들은 그 저자인 헤르만 바빙크를 더욱 알고 싶어 할 것이다. 여기에 그 책이 있다. 바빙크의 생애 전반을 비교적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 책이다. 카이퍼와의 관계와 관련하여 정치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조금 지루하다 여겨질 정도로 자세하게 다룬 점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잘 쓰여진 책이고 바빙크의 인간적인 면모를 충실하게 잘 드러내 주었다. 또한 바빙크의 업적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저자는 물론 바빙크를 화란 최고의 신학자로 인정한다.  관련링크  바빙크 전기-에글린턴에글린턴 박사의 바빙크 전기가 박재은 박사의 번역으로 다함에서 출간되었다. 12월 말에 인쇄본이 나온다고 한다. 현재 예약구매 가능한 상태다. 바빙크를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라 할 수 있다.catechism.tistory.com

교회사를 읽을 때 주의할 점 2가지-이스데반

교회사의 사건과 정황을 읽을 때 21세기 한국교회의 맥락에서 평가하고 재단할 경우 편향성이 생긴다. 교회사의 사건과 정황은 당시의 지리적 역사적 정치적 맥락 속에서 읽어내야 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장점을 현재에 취하고 단점을 거울로 삼는 취사선택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한발 더 나아가 교회사는 하나님의 섭리의 시각에서 읽어내야 한다. 역사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관점을 놓치면 인간적인 옳고 그름의 잣대가 작용하게 되고 역시 편향성이 생긴다. 보편 교회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로 교회사를 읽어낼 때 나의 위치를 올바르게 평가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치우치지 않게 그려볼 수 있다. 루터는 이래서 틀리고 칼빈은 이래서 옳다는 식의 평가는 위의 두 가지 관점이 결여된 것이다. 루터는 루터의 정황이 ..

신학산책 2019.07.06

바빙크의 미국 교회 평가

(아래는 바빙크가 1908년 스톤 강좌 강연을 위해 미국 여행을 하면서 받은 생각들이다. 21세기 한국교회의 자화상을 보는 듯한 느낌도 일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츠빙글리의 기념설을 단순기념으로 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 요즘 츠빙글리 연구자들의 견해다.) 바빙크가 미국의 교회 생활에서 받은 전반적인 인상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서보다는 일반 기업에 훨씬 가깝게 행동한다는 것과, 설교가 내용 면에서 상당히 '빈약하다'는 것이었다. 주일학교 수업은 교리문답 교육을 거의 완전히 포기했다. 많은 교회에서 찬양 순서는 다양한 볼거리로 꾸며진 공연 같았고 이것이 예배로 통했다. 교리에 거의 전적으로 무관심한 태도는 미국 교회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었다. 부흥에 대한 관심은 크지만 개혁에 대한..

사영리

고신대 신대원을 졸업한 사람 중에도 사영리를 붙들고 있는 경우가 있다. 조국 교회가 이 사슬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통일의 문이 열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신학교-전도-교회간의 괴리를 보게 된다. 이론과 실천 사이의 괴리다. 국내의 수 많은 신학자들이 마땅히 내야할 소리를 내지 않는 까닭이다. 가장 실천적으로 파고들어 교회를 장악하고 있는 이 쪽지에 대하여는 공통적으로 침묵하고 있다.   개혁파 정통주의는 이론과 실천의 조화를 항상 강조했다. 그들은 사변이 아니라 신학과 함께 가는 경건을 붙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사변에 빠진 것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껍데기를 활용하여 올바른 신학을 세우고 '경건주의'가 아닌 성경적인 경건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래서 신학과 실천의 조화를 중점에 두었..

신학산책 2019.07.05

현재 연구 및 묵상중인 주제들과 기도제목

종교개혁 이후 예정론의 논의와 목회적 적용-전택설과 후택설의 관점을 중심으로 베자의 구원론(신앙론) 내지는 칭의론 웨스트민스터총회의 문서들에 대한 각종 연구와 역사적 배경 섭리의 관점 속에서 조명하는 종교개혁 이후 교회사의 흐름 도르트 신조 라틴어 숙달 및 헬라어 복습, 이후 히브리어 복습 교회 개척 또는 청빙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 자기 성찰과 자기 점검 통일 후 북한전도 전략(과연 현재 상태에서 이것을 우리가 제대로 생각할 수 있을까?) 과연 나는 매 설교 때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잘 드러내고 있는가? 그리고 이것을 매 설교의 목표로 삼고 있는가? 그리고 이 생명수의 근원에서 기독교 윤리를 정당하게 연역해 내고 있는가? 아니면 도덕주의 또는 신앙주의 설교에 머무르는가? 개혁파 목회자 다운 진리에 ..

스데반의 걸음 2019.07.04

[인용문]목사의 공부 방식

생명나무는 시들어가는데 지식의 나무는 번성할 수 있다. 지적 지식을 확장해갈 때마다 자기를 높이는 자연적인 경향이 생긴다. 공부하는 습관에는 항상 주의가 따라야 한다. 공부는 거룩하지 못한 탐닉이 되지 않고 양심과 온전함을 포기하는 갈망이 되지 않으며 거룩하고 실천적인 지식이 아닌 사변적 탐구가 되지 말아야 한다. 긴급한 의무 이행에 사용되어야 할 시간을 방해하지 말아야 하며 그와 동일하거나 그보다 더 중요한 다른 문제를 저해하지 말아야 한다. 이 공부들이 목회라는 주된 목적을 지향하도록 건전한 판단력과 영적인 감수성이 활용되어야 한다. 그 어떤 것이라도 성경 연구나 설교 준비에 필요한 시간을 침범하지 않게 하라. 어떤 특정한 인간의 학문에 자신이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면 그것이 거룩한 공부와 최선의 발..

인용문 2019.07.04

천사들이 입은 몸의 성격-투레티누스

천사들이 나타날 때 입은 몸은 사람의 눈에는 특정한 형체로 보였지만 사실은 아무런 실체가 없는 허깨비나 환영이었던 것도 아니었고, 원래부터 그들이 지니고 있던 고유한 몸도 아니었으며, 단지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 경륜을 위해 일시적으로 빌어서 입은 몸이었다. 그들은 자유의지에 의해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을 수행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몸을 입었다. 그 몸은 무엇이었고 어디에서 생겨난 것인가(즉 무에서 또는 기존의 어떤 물질에서 창조된 것인가, 압축된 공기 또는 어떤 압축된 재료를 사용하고 결합해서 만들어 낸 것인가)에 대해서는 성경이 침묵하기 때문에, 호기심에 따라 이런 질문을 묻고 정의하는 것은 경솔한 짓이다. 따라서 위험을 감수하고 이런 문제를 캐물어서 범죄 하는 것보다는 차리리 모르는 것이 더 낫다. ....

인용문 2019.07.03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율법과 복음-스티븐 J. 카셀리(역사신학-인물)

이 책의 부제는 다음과 같다. 엔서니 버지스의 언약신학과 율법과 복음의 관계. 이 책은 버지스와 웨민 신학의 상호작용을 17세기 컨택스트 안에서 조명하는 잘 쓰여진 책이다. 여기에서 다루는 신학의 촛점은 언약신학과 율법-복음의 관계성이다. 설교자들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읽을거리임에 틀림없다. 아래에 추천자 싱클레어 퍼거슨의 글중에서 일부를 인용한다. 싱클레어 퍼거슨의 추천사 중에서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율법과 복음의 안테나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곳을 감안할 때, 본서는 결국 17세기 중엽 신학과 관련하여 가장 빈번히 제기되는 일부 주장들이 거짓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본서는 소위 스콜라적 정통은 초기 개혁자들의 저서에서 변질된 돌연변이라는 초기 학계의 공감대를 뒤집는 광범위한고 면밀한 연구에 해당한다. 즉 ..

17세기 영국과 대륙의 신학 교류에 대하여-카셀리

영국의 청교도주의 역사는 보다 광범위한 국제적 흐름의 한 부분이다. 칼 트루만이 관찰했듯이 영국의 청교도 저서는 "대륙의 자료에 대한 긍정적 인용으로 가득하며 대륙 사상가들과의 대화를 통해 형성되며 대륙의 많은 저자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읽히고 평가된다." 영국과 대륙 사이에는 종교개혁 시대 내내 지속적인 교류가 있었다. 망명자들은 박해의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흩어져 다니며 학자와 교사 모두 자유로운 교류가 있었다.마틴 부처는 케임브리지에서 가르치고 피터 마터는 옥스퍼드에서 가르쳤으며 윌리엄 에임즈는 화란에서 가르쳤다. 또한 신학 서적의 자유로운 교역은 문헌적 증거와 함께 국제적 정보 교환의 발판이 되었다.한 마디로 "영국 신학자와 대륙 신학자 사이에는 17세기 내내 지속적인 대화가 있었다"라는 것이..

인용문 2019.07.02

예지의 의미-칼빈

하나님께 예지가 있다는 것은 만물이 언제나 하나님이 보시는 가운데 있었고 영원토록 그런 상태로 있을 것이므로 하나님의 지식으로서는 미래나 과거에 속한 것이 없고 모든 것이 현재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 현재라는 것은 곧 그가 그것들을 관념을 통하여 생각하신다는 의미일 뿐 아니라 마치 우리가 무언가를 기억하면 그것이 지금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듯이 그가 그것들을 진정으로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것들로 바라보시며 분별하신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예지는 우주 전체에까지 미치며 또한 모든 피조물 하나하나에까지 미친다.  기강 3.21.5. 원광연 역.

인용문 2019.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