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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논문들을 읽을 때 느끼는 아쉬움

이런 저런 신학 논문들을 읽을 때가 있다. 단편 논문집 같은 것을 읽을 때가 있는데, 신학적인 논구는 치밀하고 정확하게 펼쳐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아쉬움이 남는 것은 그 논문들이 목회적 적용, 즉 교회적 실천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결론에서 보여주는 경우는 잘 없다. 조직신학논문이든 성경신학 논문이든 마찬가지다. 그런 논구 자체가 무의미하다고는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다. 패커 박사의 말대로 신학자의 임무는 더러운 오염을 정화하여 교회로 순화된 물을 흘려보내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목회자들의 설교와 예배인도에서 이런 점들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제시가 논문마다 포함되어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그래야 신학교의 바르고 정당한 성경적 신학이 교회 안으로 스며들 수 있을 것이다. 고..

신학산책 2023.06.26

열매가 나무를 말해준다-방지일

근래 들어 대중 앞에서 크게 목소리만 높이면 무슨 일이든 다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마치 데살로니가와 에베소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소동을 부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특히 에베소 사람들은 왜 모였는지 이유조차 모른 채 한밤중에 두 시간이나 그들 여신의 이름을 외쳐댔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에서 고함치는 일이 이와 같다 하면 심한 말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을 하지 않고 소리질러서 원하는 것을 구하려는 모습은 없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제 고함 없는 회개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게 회개의 열매가 맺힐 때 믿지 않는 자에게 더 큰 충격을 주게 될 것입니다. 회개 없이 큰 소동만 일으켜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분위기를 뜨겁게 하는 모습은 믿지 않는 자들이 볼 때 ..

개혁신앙 2023.06.22

흥분상태의 신앙행위-방지일

수년 전 일입니다만,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빌리 그래함 대집회 때도 결단의 시간에 일어선 사람이 무척 많았습니다. 봉사원들이 대거 동원되어 그들의 이름과 주소를 다 적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소대로 주변의 교회에 모두 통첩을 띄웠습니다. 그때 저희 영등포교회에 온 결단자 수만해도 약 153명이었는데 다 주소가 분명해서 일일이 그들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후 정말 놀랄 만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단했던 사람들은 대부분이 믿는 사람들로 세례 교인, 집사, 심지어 장로 직분을 받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결단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것인데 왜 이렇게 일어나서 결단하고 이름까지 적었는가 물었더니 일어서라고 해서 일어선 것일 뿐이라고 합니다. 모두 다 일어나는 판에 자기만 어떻게 앉아 있을 수 ..

개혁신앙 2023.06.15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세-스프로울

우리는 가볍고 친숙하지 격식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그것을 투영시킨다. 우리는 거만한 친숙함으로, 경멸을 조성하는 그와 같은 무례함으로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성취하신 역사에 의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접근이 허용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나 우리의 칭의가 하나님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의 가족으로 입양하셨다는 사실이 하나님이 거룩하고 영원하신 존재이기를 그친다거나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기를 중지하신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위엄을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신자들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거만하게 혹은 격식을 무시하는 친숙함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우리..

개혁신앙 2023.06.12

거룩의 개념-스프로울

성경이 거룩에 관해 말할 때 그 개념은 도덕적 완전성 혹은 순결함의 일종이다. 뿐만 아니라 거룩이란 용어는 하나님의 초월성-모든 피조물들과 비교되는 그의 궁극적 위대함-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거룩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가 모든 피조물들 위에 그리고 피조물들을 넘어서 초월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R. C. 스프로울,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 해설 1, 부흥과개혁사, 56.

개혁신앙 2023.06.12

세례의 삼중 위로-칼빈

세례는 삼중의 위로 또는 열매를 믿음에 제공한다. 곧 세례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깨끗하게 된 것(죄 사함과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에 대한 상징이자 증거다. 세례는 우리에게 죄 죽임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명을 보여 준다. 그리고 세례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모든 유익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빔 얀서) 헤르만 셀더하위스 편, 칼빈 핸드북, 부흥과개혁사, 684.

개혁신앙 2023.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