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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나는 첫 순간을 알 수 있는가-브라켈

누군가가 거듭나는 첫 순간을 어떻게 알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믿음의 처음 행위를 통해 알 수 있다고 답하겠습니다. 더 나아가 믿음을 처음 행사하는 시점을 반드시 알아야 하며 알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그 시점을 반드시 알 필요는 없으며 확실하게 알 수도 없다고 답하겠습니다. 죄에 대해 처음으로 심각하게 자각하기 시작했다면, 아직 믿음을 가지지 못했을 개연성이 큽니다. 의식적으로, 그리고 마음 깊이 우러나는 태도로 믿음을 처음 행사할 때에 믿음이 시작된다고 판단한다면, 믿음의 시작을 너무 늦게 잡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십중팔구 그 이전에 믿음을 소유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믿음이 시작되는 시점과 거듭남이 일어나는 때를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안다고 해도 극히 드문 경우라고 주..

개혁신앙 2022.05.23

역사적 믿음-브라켈

역사적 믿음이란 하나님 말씀의 역사(성경에 기록된 내용)를 알고 그것을 사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은 그 내용을 따라 행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내용보다 오히려 세상의 역사에 영향을 더 크게 받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며, 때때로 진리를 고백하게 만들지도 못합니다. 빌헬무스 아 브라켈, 그리스도인의 합당항 예배 2, 지평서원, 380-381

개혁신앙 2022.05.23

신자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처벌)의 성격-칼빈

하나님께서는 범죄와 맞먹는 처벌을 꼭 받아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위선을 제거하고, 선택받은 자들로 하여금, 세상의 유혹을 점차 벗어 버리는 가운데 회개에 이르게 하며, 그들에게 경성하는 가운데 간구하게 하며, 경외심이라는 재갈을 통해서 그들을 억제하는 그러한 처벌을 받아 내고자 하신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존 칼빈, 창세기 주석 2, 신교출판사, 470 (49:5 주석 중).

개혁신앙 2022.05.12

칼빈주의는 OO이다.

칼빈주의는 사랑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알고, 그에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잘 사랑하는 사람이 참 칼빈주의자다. 그렇게 잘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짝퉁 칼빈주의자다. 나는 짝퉁에 불과하다. 기적은 다름 아니라 그런 짝퉁을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으시는 것이 기적이다. 그래서 칼빈주의는 은혜다. 은혜 위에 더해지는 은혜를 받고 회개하고 찬송하는 것이 칼빈주의다.

신학산책 2022.04.30

니가 먼데?-롬 14:4

바울은 먹느냐 안먹느냐를 가지고 비판하려는 사람들을 상정한 후에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라고 쏘아붙인다. 그를 세우시는 분은 주인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까운을 입느냐 안입느냐 가지고 비판하는 것이나, 부활절을 지키는가 아닌가의 문제로 비판하는 것도 이런 류의 문제에 해당할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바울이 먹는 문제에서 날의 문제로 넘어가면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볼때, 이는 문맥상 제유법적 확장 해석이 가능하다. 바울의 요지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을 자신의 기준과 잣대로 비판하는 너는 도대체 어떤 인간이냐? 네가 하나님이라도 되는 것이냐?"라는 말이다. 비본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형제를 업신여긴다면 그 형제의 주인되시는 ..

신학산책 2022.04.28

옛 사람이 죽는 것과 새 사람이 사는 것

옛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시켰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뉘우침이요, 그로 인하여 점점 더 그런 죄를 미워하고 거기서 피하는 것이다.그리고 새 사람이 다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이요, 또한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선한 행실로써 사는 일에 대한 욕망과 사랑을 갖는 것이다. 헤르만 바빙크, 개혁교의학 개요, 크리스천 다이제스트, 544.

율법과 복음-바빙크

율법과 복음은 서로 정도가 아니라 종류 자체가 다르다. 그 둘은 마치 수요와 공급이 다르듯이, 명령과 약속이 다르듯이, 요구와 제공이 다르듯이, 그만큼 서로 다른 것이다. 복음은 물론 율법도 하나님의 뜻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 뜻이 거룩하며 지혜롭고 선하고 신령한 것은 사실이다(롬 2:18, 20; 7:12, 14; 12:10). 그러나 율법은 죄 때문에 무기력해졌고, 의롭다 하기는 커녕 오히려 죄를 악화 시키며, 진노와 심판과 죽음을 촉발시킨다(롬 3:20; 4:15; 5:20; 7:5; 8:9, 13; 고후 3:6 이하; 갈 3:10, 13, 19). 그러나 복음은 이것과 대조적으로, 그리스도를 그 내용으로 하며(롬 1:3; 엡 3:6), 오로지 은혜와 화목과 죄 사함과 의와 평화와 영생을 가져온다(..

개혁신앙 2022.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