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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한 축-러틀리지

예수가 당한 죽음은 순교자의 죽음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 죽음은 독특하고, 독특한 의미가 있다. 사복음서는 예수가 수난당하는 동안 겪은 신체적 고통에 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예수의 수난 내러티브에서 신체적 고통이 언급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예상하는 바와는 매우 다르다. 복음서 저자들은 우리가 다른 곳에 초점을 맞추기를 원한다. ... 예수의 사망이 단순히 하나의 죽음으로만 이해된다면 - 비록 그 죽음이 고통스럽고 고난의 죽음일지라도 - 중요한 요점이 상실될 것이다. 십자가형은 특별히 개인의 존엄에 대한 궁극적인 모욕, 즉 창피를 주고 인간성을 말살하는 최후의 처방으로 고안되었다. 체면 손상이 십자가형의 요체였다. 조엘 그린의 말마따나 "주요 교차로나 통행량이 많은 주요 도로에서 나체로 공개 처형을 ..

개혁신앙 2022.03.16

사도신경의 빌라도

기독교 초기 몇 백년 동안에는 예수를 세상 밖으로 완전히 끌어내려고 위협하는 강력한 조류에 전투적으로 맞설 필요가 있었다. 우리 시대에 규칙적으로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경을 암송하는 교인들은 그 신경에서 본디오 빌라도의 이름을 부르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 보니 신학 성명서에서 이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깨닫지 못한다. 이 신경들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잘 알려지지 않았을 이 지방 총독의 이름이 기독교 고백의 중심에 영원히 보존되어 왔다. 이는 그 고백이 우리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성육신 - 그런 일이 있었다면 이는 반영지주의적인 사건이다 - 의 놀랍도록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성격을 확고히 해주기 때문이다. "구원사에 있어서 신성모독적인 인물"이 사도신경에 등장하는 이유는 예수라는 인물의 인간적 삶과 죽음..

개혁신앙 2022.03.16

십자가형과 관련한 자신의 올바른 위치-러틀리지

고린도 교회의 회중은 십자가형과 관련한 자신의 올바른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 교회는 중요한 시험 사례 중 하나다. 그들은 자신을 십자가 안에 위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마치 이미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 것처럼 자신들을 십자가 너머에 위치시키거나(고전 2:15, 14:37의 신령한 자), 고난이 그들 뒤와 아래에 있는 것처럼 자신들을 십자가 위에 위치시켰다(고후 12:11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 바울이 판단하기에는 이 문제들이 고린도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이 부족한 이유였다. 그것이 바로 바울이 유명한 고린도전서 13장을 쓴 이유다("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1:37). 감상적이고 지나치게 "영적인 사랑은 십..

개혁신앙 2022.03.16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베드로의 설교에 대한 소고

사도행전 2장에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등장한다. 소위 외국어 방언으로 알려진 장면이 전반부에 등장한다. 그리고 후반부는 베드로가 일어나 이 사건의 의미를 변증하는 설교가 나온다. 베드로는 이 성령 강림 사건으로 말미암아 이제 기적과 이사를 행하는 능력이 부어졌으므로, 나아가 기적과 이사를 행하라고 선동하지 않았다. 치유받을 사람이 있으면 집결하라는 지시도 없었다. 모두 방언을 하라고 부추기지도 않았다. 능력을 받으라거나 은사를 체험하라는 메시지도 없었다.   베드로의 메시지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구원의 때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 이 두가지로 연결시켰다. 즉 성령 사건은 구원 사건이고, 이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건이다. 왜냐하면 성령은 그리스도를 증언하시는 분이..

신학산책 2022.03.12

시편 102편 설교-플레밍 러틀리지

은퇴한 미국 성공회 여성사제 플레밍 러틀리지(Fleming Rutledge, 1937- ) 를 국내에 소개된 그녀의 저술 "예수와 십자가 처형"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지금 이 책을 읽는 중이다. 천페이지 분량이다. 그녀는 미국 성공회(episcopal church)의 충성스러운 교구 사역자였다. 그녀가 82세 때 휘튼에 초청받아 시편 102편을 설교한 장면을 보았다. 그녀의 시편 설교는 시편 그 자체의 의미를 회중의 가슴에 전달하는 짧은 설교였지만 감동적인 설교였다. 설교라기 보다는 시편 102편의 소개라고 하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시편은 이런 식으로 설교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힘을 빼고 잔잔하게 증거하는 그녀의 설교를 들어보시라. 물론 한편의 통상적인 완성된 설교라고는 생..

동영상 2022.03.07

어린이 세례/성찬

어린이 세례라는 것이 점차 확장되고 있는 추세다. 일단 현재 내가 가진 생각은 대충 이러하다. 세례는 언약 자손으로 받아야하는 경우가 있고, 자라서 직접 신앙고백 후에 받아야 할 경우가 있다. 보통 전자를 유아세례 후자를 성인세례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가 있다. 자녀를 낳고 키우다가 늦게 복음을 듣고 믿게 되었는데 자녀는 7세에서 10세 정도 되었다. 그런 경우 유아세례의 시기도 지났고, 성인 세례를 받기에는 이르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세례의 사각지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그러면 유아세례와 성인세례 사이의 사각지대의 어린이들에게 세례를 주는 근거를 어떻게 부여할 것인가라는 점이 등장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성찬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이 어린이들을 언약 자손의 입장에서 부모의 서약을 통..

신학산책 2022.03.05

영접기도-이승구

스데반의 생각이승구 교수님의 영접기도에 대한 해설은 건전하다. 다만 본인은 이승구 교수님의 해설에 동의하면서도 좀 더 무게 중심을 다르게 두면서 첨언하고 싶다. 즉 '영접기도'라는게 교회사적으로 개혁교회와 올바른 교회 안에서 참되게 존재해왔는가라는 점에 비중이 요구된다. 비록 요한복음 1:12을 중심으로 그리고 많은 잘못된 사람들과 달리 참된 신학자답게 복되게도 중생과 연결하여, 즉 1:13절과 연결하여 설명해 주신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교회사적으로 영접기도의 시작과 교회 안에서 존재하게 된 배경들이 다루어지지 않은 점이 못내 아쉽다. 혹 편집에서 잘린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영접기도'라는 것이 원래 교회 안에 있었고, 그것이 원래 부터 종교개혁자들로부터 아니면 초대교회로..

동영상 2022.03.04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우위-프롱크

믿는 사람이 그리스도께 대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릴 때, 이것은 절대로 의식하고 결정한 결과가 아닙니다. 이것은 타이어에 아주 조그만 구멍이 난 것과 비슷합니다. 처음에 나타나는 특징은 개인 경건의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사탄은 기도를 아예 멈추고 하나님 말씀을 그만 읽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를 조금 바꿔 보라고 제안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교회와 관련한 온갖 활동에 헌신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설교를 듣고 성경을 배우고 당회와 다른 모임에 참석하더라도, 주님과 은밀히 만나는 시간이 적어지기만 하면 마귀는 즐거워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주님과 우리의 인격 관계로 이루어진 수직의 차원을 망가뜨려 가며, 신앙의 수평 관계에 사로잡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와 관계가 끊어진 상..

개혁신앙 2022.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