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유재신론과 범신론-비키 고대의 철학은 만유재신론(panentheism)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범신론(pantheism)은 만물이 다 신이라고 보는 사상인 반면, 만유재신론은 신이 만유에 스며들어 있어서, 만물이 몸이라면 신은 영혼으로서 신과 만물이 아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고 보는 사상이다. 만유재신론은 흔히 모든 지성 또는 정신을 신적인 존재의 일부로 본다. 조엘 비키, 폴 스몰리, 개혁파 조직신학 1, 부흥과개혁사, 309. 인용문 2021.02.22
자연 신학-비키 자연 신학은 관찰 가능한 실제 세계에 대한 합리적인 성찰을 통해 얻어지는 하나님에 대한 신념 체계다. 자연 계시는 하나님의 일이고, 자연 신학은 인간의 일이다. 그들에게(기독교 호교론자들에게) 자연 신학은 호교론적이고 변증적인 신학을 위한 합리적인 도구다. 하지만 일부 신학자들은 자연 신학을 호되게 비판하거나 배척해 왔다. 우리는 균형 잡힌 성경적 접근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에서부터 독립적인 자연 신학을 세우는 것을 피하면서도, 그리스도인이 비기독교인들과 대화할 때는 일반 계시에 호소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조엘 비키, 폴 스몰리, 개혁파 조직신학 1, 부흥과개혁사, 292. 관련링크 인용문 2021.02.22
신학과 겸손-비키 신학을 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과정에서 우리가 아는 것이 얼마나 없는지를 깨닫고서 점점 더 겸손해지게 만드는 활동이다. 성령이 복 주시고 인정하시는 신학적인 지식이 우리에게 점점 더 늘어날수록, 우리는 우리의 지혜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를 점점 더 깨닫게 된다. 우리가 아는 것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를 알게 되면, 우리는 우리가 알고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려는 시도를 단념하게 된다. 조엘 비키, 폴 스몰리, 개혁파 조직신학 1권, 부흥과개혁사, 81. 인용문 2021.02.12
[인용문]부르심의 의미-브라켈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지 않고서도 그리스도를 사람에게 직접 나타내실 수 있으며,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어 믿고 구원에 이르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의 다양한 지혜가 나타나는 가운데 여러 속성들이 영광을 받도록, 사람들을 부르고 복음의 말씀을 통해 구원에 참여시키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이성을 지닌 사람을 이성적인 방식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편을 '부르심'이라고 일컫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멸망으로 향하는 악한 길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길을 잃고 헤매는 자들이 결국 영원한 멸망에 이를 것이라고 외치면서,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인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오라고 초청하십니다. 빌헬무스 아 브라켈,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예배 2권, 지평서원, 276. 스데반의 생각 그러므로 .. 인용문 2021.02.11
[인용문]선택의 근거-바빙크 ... 선택이 특정한 사람들을 그 대상으로 삼지만, 그 사람들 자신이 선택의 근거나 기초는 아니다. 그 기초는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자신이 불쌍히 여길자를 불쌍히 여기시므로, 원하는 사람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사람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것이다(롬 9:15-16). 믿음도 여기서는 해당되지 않는다. 믿음이란 선택의 결과 혹은 열매이지, 선택의 조건이나 근거는 아니기 때문이다. 믿음은 결국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엡 2:8). 신자들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받고, 정하신 때에 믿음에 이르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는 것이다(엡 1:4). 그러므.. 인용문 2021.02.06
[인용문]십자가와 영성-이태복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뚫어지게 바라보지만, 더 깊은 영성의 삶을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곁눈질할 뿐이다. 그리고는 뭔가 더 신령한 영적 훈련들을 수행함으로써 더 깊은 영성으로 들어가려고 몸부림친다. 한때는 자기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주님 앞으로 한 발자국도 가까이 갈 수 없음을 고백하며 빈손으로 십자가만 바라보던 많은 사람들이, 이제 무슨 영문인지 특별한 영성 훈련을 수행함으로써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처음 구원을 얻었던 그때처럼 빈손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서서 피 흘리면서 죽어 가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고 그에게서 참된 거룩의 동기와 능력이 되는 사랑을 공급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태.. 인용문 2021.02.01
[인용문]삼위일체와 그리스도 중심의 영성-이태복 만일 우리가 삼위일체의 신비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죄인들로 하여금 거룩하신 삼위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만들어 주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더 소중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또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중보자로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일을 더 깊이 알면 알수록, 우리는 주님의 희생으로써 이루어진 성부 하나님과의 교제, 성령 하나님과의 교제를 우리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중심의 영성은 절대 삼위일체적 영성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태복, 영성 이렇게 형성하라, 지평서원, 162. 인용문 2021.02.01
[인용문]설교자와 중생교리-오웬 말씀을 전하는 복음 사역자에게 있어서,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영혼 가운데 거듭남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의무이다. 또한 자신이 전하는 말씀이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통로가 될 수 있도록 거듭남이라는 성령의 사역의 본질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것 역시 필수적인 의무이다. 거듭남에 관한 지식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복음 사역자가 자신의 의무와 사역을 제대로 감당하기란 불가능하다. 복음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본래 죄와 허물로 죽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복음 사역자는 그들을 거듭나게 하는 통로로 임명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복음 사역자가 거듭남의 본질과 방편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것은 미친 것이나 다름없고, 장차 심판받아야 할 일이다. 자기 자신.. 인용문 2021.01.25
[인용문]거듭남의 가치-스윈녹 만일 당신이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그리고 사람이 모든 시간과 힘과 생각과 말과 행동을 다 투자해도 아깝지 않을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거듭남'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하고 가장 탁월하며 가장 큰 유익과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때도 나는 '거듭남'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거듭난 사람은 사람이 소유해야 할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거듭난 사람은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다. 설령 그 사람이 온 세상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해도 거듭남의 빈자리를 채울 수는 없다. 거듭남이 없는 것은 지옥이다. (조지 스윈녹) 발.. 인용문 2021.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