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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밑에 선다는 것-웰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지적, 도덕적, 종교적인 자기 교만을 굴복시키는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십자가 밑에 선다는 것은 옳고 그름에 대한 자기 기준을 보편 규범으로 높이려는 우리의 성향을 뉘우친다는 뜻이요, 그 대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십자가 밑에 선다는 것은 자기 의의 원천인 자아의 무죄성을 믿는 우리의 신념을 뉘우친다는 뜻이요, 도리어 자아의 타락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십자가 밑에 선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의 중심에서 우리 자신을 추방한다는 뜻이요, 그리스도를 영광의 자리로 높인다는 뜻이다. 십자가 밑에 선다는 것은 우리의 상습적인 자기몰두가 고질적인 이기주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뜻이다. 십자가 밑에 선다는 것은 우리가 자신에게 내리기 쉬운 낙관적인 평가..

개혁신앙 2021.11.01

하나님을 높이라-스펄전

하나님은 창조주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권자입니다. 하나님을 지배하는 법은 없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만들 권리도 없앨 권리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죄를 지을 때 하나님에게는 그 사람을 구원하든지 파괴하든지 할 권리가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자신의 정의를 손상시키지 않고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면 하늘에 노래가 울려 퍼질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인간을 파괴해도 그의 선하심에는 이상이 없고 비참의 깊은 저음을 가진 지옥도 강하게 요동치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가르침 속에서 하나님이 가장 두드러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목회자들의 건전성을 시험하는 척도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죄인을 흙바닥으로 끌어내린다면 ..

개혁신앙 2021.11.01

[인용문]오직 그리스도-칼빈

우리가 그리스도의 탁월하심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면, 어째서 우리가 그런 이상한 교훈에 끌려다니는가[히 13:9]? 오직 그리스도만 다른 모든 것을 홀연히 사라지게 만든다. 그래서 사탄에게는 그리스도를 가리도록 안개 끼우는 일을 달성하려고 애쓰는 것만큼 많이 애쓰는 일이 없다. 왜냐하면 사탄은 이 방법으로 모든 거짓에 길이 열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그리스도의 탁월하심이 참으로 인지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를 그분의 모든 복과 더불어 목전에 제시하는 것)이 순수한 교리를 회복할 뿐 아니라 유지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존 칼빈, 골로새서 강해 1:12) 스티븐 웰럼, 오직 그리스도, 부흥과개혁사, 17.

개혁신앙 2021.10.31

사도행전과 요한계시록

특별히 사도행전과 요한계시록이 잘못 가르쳐지거나 제대로 가르쳐지지 않거나 오류가 뒤섞인 가르침이 난무한 관계로 5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무지와 맹목적인 신앙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듯 하다. 목사가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까닭이다. 젊은 세대들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상황은 별로 나아진 것도 아니다. 희미한 빛은 보이나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아직 강렬한 불꽃으로 타오르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구세대들의 인간중심 설교가 거두어질 때가 올 것이다. 에스겔 4장의 파수꾼의 사명은 목사가 심중에 항상 새겨야 할 것이다. 성경을 통해 설교에서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는 세대가 오늘날 세대이다. 그러나 성경은 온통 그리스도의 피로 뒤덮여 있다. 그렇게 말들은 하지만 그렇게 설교를 해..

신학산책 2021.10.31

타락한 사람의 이성과 의지-칼빈

사람이 선과 악을 식별하여 이해하고 판단하게 하는 이성은 자연적 은사에 속하기 때문에 완전히 지워낼 수는 없지만, 부분적으로 약화되고 부분적으로 부패하여 그 흉한 폐허만 드러낸다. 이런 뜻에서 요한은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라고 전한다. 이 말씀에는 두 가지 사실이 분명히 표현되어 있다. 첫째, 사람의 타락하고 변질된 본성 가운데는 섬광들이 여전히 번쩍이고 있다. 그것들은 그가 지성을 부여받았기에 야수들과는 구별되는 이성적인 동물임을 보여 준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빛은 아주 짙은 밀도의 무지에 질식되어 효과적으로 드러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의지도 사람의 본성과 분리할 수 없으므로 파멸되지는 않았으나 사악한 욕심의 사슬에 묶여 어떤 올바른 것도 추구할 수 없게 ..

개혁신앙 2021.10.30

칼빈과 겸손

우리 철학의 근본은 겸손이라고 한 크리소스토무스의 말은 나를 항상 즐겁게 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은 더욱더 그러했다. "어느 수사학자는 웅변의 규범들 가운데 첫 번째가 무엇이냐고 질문을 받았을 때 '화술'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두 번째도 '화술', 세 번째도 '화술'이라고 대답했다. 만약 당신이 기독교의 규범들에 관해서 묻는다면 나는 항상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겸손'이라고 대답하기를 좋아했을 것이다." 존 칼빈, 기독교강요2, 문병호역, 생명의말씀사, 68(2.2.11). 관련링크: https://blog.daum.net/catechism/921 [인용문]신학하는 자의 자세-이동영 명심해야겠거니와, 우리의 신학은 도상에 있으며 아직 본향에 도착하지 못한 나그네의 신학이기에 부분적이고 미완..

개혁신앙 2021.10.29

타락한 사람에게 자유의지라는 말의 사용-칼빈

'자유의지'라는 말을 지니고 있으면 교회에 아주 큰 위험이 생길 수밖에 없으나 그것이 없어진다면 교회에 큰 유익이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 자신은 이 말을 사용하지 않기를 바라며,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충고를 구한다면, 그들 역시 이 말을 멀리하기를 바란다. 존 칼빈, 기독교강요2, 문병호역, 생명의말씀사, 64.(2.2.8) 스데반의 생각칼빈은 타락한 사람은 죄의 노예 상태이기 때문에 자유의지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는 입장이다.

개혁신앙 2021.10.29